지리산 한화리조트에서 간단히 조식을 해결하고 10시경 서울로 향한다.
서쪽발 황사로 인해 고속도로가 뿌였다.
마곡사(麻谷寺)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태화산(泰華山)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本寺)이다. 2018년 6월에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태화산 마곡사는 640년(백제 무왕 41)에 신라의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1851년에 쓰여진 「태화산마곡사사적입안(泰華山麻谷寺事蹟立案)」에는 "초창은 자장이요, 재건은 보조(체징體澄)이며, 3건은 범일(梵日)이요, 4건은 도선(道詵)이며, 5건은 학순이다"라고 한국 불교사상 고명한 승려들의 연관설을 싣고 있지만,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 등 신빙성이 약하다. 삼국 말기, 백제와 신라의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에 백제의 핵심부에 신라의 승려인 자장이 창건했다는 사실도 믿기 어렵다. 1199년에 불일 보조국사가 폐허화된 마곡사를 중수할 명을 받고 재건했다는 기록 정도가 믿을 만하다고 보인다.
마곡사에 현존하는 유적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오층석탑으로 이는 13세기 몽골 간섭기에 세워진 것이 분명하며, 그 이전에 사격을 갖춘 가람이 형성되었다고 보여진다. 당시에는 대웅전과 영산전 등 불전과 승방들이 30여 동 건립된 것으로 전한다.
현재의 전각들은 1650년 각순선사가 중수하고, 1782년 큰 화재가 일어난 이후 체규선사가 중건한 이후의 것들로 보인다. 마곡사의 가람구성은 매우 독특하다. 개울을 사이에 두고 남원과 북원으로 두 개의 가람이 공존하고 있는 형태이며, 남원은 영산전을 중심으로 일곽을 이루고, 북원은 대광보전(大光寶殿)을 중심으로 별도의 일곽을 이룬다.
전체 규모나 건물들의 크기로 보면 북쪽의 가람이 본절이고 입구 쪽의 영산전 일곽은 별도의 암자와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북원의 입구인 해탈문(解脫門)이 남원 가람 앞에 세워져, 북원에 진입하려면 해탈문에서 개울을 건너 들어가야 하는 특이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가람의 규모와는 관계없이, 남쪽의 영산전 일곽은 4동의 건물들이 짜임새 있게 갖추어진 데 비해, 북원은 계속 확장된 흔적이 역력하다. 대광보전 뒤 언덕 위 좁은 터에 대웅보전을 위치시킨 점이나, 입구인 해탈문을 개울 건너 남원 영역에 배열한 점 등은 그 흔적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전각들도 조선 초기의 흔적을 보이는 영산전이 조선 후기의 것들인 대광보전이나 대웅보전에 비해 오래된 연륜을 가지고 있다.
신라 말 도선대사는 마곡사터를 이렇게 칭찬했다고 한다. "삼재가 감히 들지 못하는 곳이며, 유구와 마곡 두 냇물 사이의 터는 능히 천명의 목숨을 구할 만하다." 그 두 개울 사이의 터가 영산전이 자리잡은 남원이다. 남원 일곽은 안산과 주산을 잇는 자연 축과 영산전-강당의 방향을 일치시키고 있는데, 마곡사 전체에서 가장 안정된 지형의 형국을 가진 자리이다.
아마도 남원 일곽에 원래의 가람을 창건하였다가, 고려 중기에 사찰을 확장하면서 개울 건너 북원 일곽을 개창한 것으로 추정된다. 새로 개창된 북원 가람에 새로운 전각들이 들어서면서 이곳이 주가람이 되고, 기존의 남원 가람은 영산전 일곽으로 변화되어 부가람이 된 것으로 보인다.
영산전은 적어도 18세기 이전에 중창된 건물이며, 마곡사의 현존 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완전한 주심포계 구조로, 첨차의 고전적인 모습이나 배흘림기둥 등 조선 초기 건물의 전통이 남아 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집으로 길고 평활한 형태지만 높은 이중기단 위에 올려져 옛 백제 지역의 건축 전통도 따르고 있다.
내부에는 7구의 불상과 그 주위를 둘러싼 1000여 구의 작은 불상들이 앉아 있다. 보통 영산전은 설법하는 석가불과 10대 제자상 정도만 안치되는 데 비해, 이 전각은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는 석가불을 포함한 과거 7불과 설법을 듣는 수많은 군중들의 '영산회상' 광경을 재현하고 있다.
대광보전은 1831년에 중창된 것으로, 정면5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지붕 건물이다. 비록 단층의 불전이지만, 기둥과 부재들이 견실하게 결구되어 있어 뒤편 중층 대웅보전보다는 훨씬 우람하고 견고해 보인다. 동남부 모퉁이의 기둥은 지름이 1m 정도로 지나칠 만큼 두터운데, 뚜렷한 민흘림이 있는 이 기둥은 뒤편 대웅보전으로 동선을 유도하는 역할도 일부 담당한다.
내부에는 불상이 안치된 불단이 동쪽에 있어서 내부공간의 방향과는 직각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불규칙하게 세워진 고주들의 기둥열은 내부의 공간적 방향성과도 무관하다. 아마도 여러 차례 중창과 중수를 거치면서 현재와 같이 변한 것으로 보인다.
대웅보전은 대략 19세기 전반기에 중창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화엄사 각황전, 법주사 대웅전, 무량사 극락전과 함께 4개 밖에 안 되는 조선시대 중층불전이지만, 다른 예들에 비해 건물의 질은 그다지 우수한 편은 아니다. 공포는 다포식 구조로 쇠서 끝에 연봉을 새겨 조선 말기의 장식적인 경향에 흐르고 있다. 1층이 5칸×4칸, 2층이 3칸×2칸의 칸살을 가지며, 1층 고주가 바로 2층의 외곽기둥이 되는 가장 간단한 중층집의 구조를 채택했다. 건물의 폭이 좁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내부공간의 수직적인 모습이 강조된다.
대광보전 앞마당 중앙에 세워진 오층석탑은 8.67m의 높이로 가늘고 긴 외관을 가지며, 낮은 체감율로 불안정하게 보이는 고려 중기의 탑이다. 탑신은 주목할 것이 없지만, 상륜부는 이른바 '풍마동(風磨銅)'이라는 특수한 제작물이 설치되어 있어 매우 독특한 모양을 이루고 있다. 이는 티베트와 네팔 일대에서 발전한 라마교의 불탑을 축소해놓은 형식으로, 양양의 낙산사(洛山寺)탑 정도에서 간략한 형태를 찾을 수 있을 정도로 희귀하다. 세계제국 몽골은 라마교를 국교로 삼았고, 원나라 간섭기에 고려에도 라마교가 유입되어 전국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마곡사 오층석탑의 상륜부는 그 당시 라마교의 영향을 간직하고 있는 흔적이다.
절입구에서 산 군밤을 먹으며 귀경길에 오른다. 역시 공주 밤맛은 일품이다.
마곡사에서 지방도를 거쳐 3차선 고속국도로 평택대교를 지나 오성IC에서 17번 고속도로로 봉담 과천을 거쳐 서울에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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