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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마라톤에 대한 여러가지.

by 도화유수 2016. 1. 1.

 

 

 

 

한국 마라톤의 역사는 약 80여년이다. 마라톤 첫 공식 기록이었던 3시간 29분 37초(마봉옥)가 현재는 2시간 07분 20초(이봉주)로 단축이 되었다. 한국 마라톤 역사의 시간은 자꾸 길어지고 있지만 기록은 단축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최초의 마라톤 공식기록은 마봉옥씨에 의해 작성이 되었다. 1927년 조선신궁 체육대회에서 3시간 29분 37초로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1930년에는 인력거를 끄는 이성근이 2시간 36분 30초의 기록을 세웠고, 1931년엔 김은배가 2시간 26분 12초로 그 당시 비공인 세계기록을 수립하며 우승을 했다.

 한국인으로 처음 올림픽에 출전한 것은 1932년 LA올림픽이다. 그것도 한명이 아닌 두 명이나,,, 권태하라는 청년과 당시 고교생이었던 김은배가 그 주인공이다. 권태하는 9위에 김은배는 6위를 차지했다

 한국인 최초로 올림픽에 출전해서 금메달을 딴 사람은 누굴까? 굳이 묻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아는 역사적 사실일 것이다.

손기정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1935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2시간 25분 19초 라는 한국 최고 기록 및 대회 신기록을 수립하면서 월계관을 쓰게 된다. 암울했던 일제 치하에서 어쩔 수 없이 일장기를 달고 뛰어야 했던 손기정, 그 한을 가슴에 안고 달려, 만천하에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주면서 민족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한민족의 한을 풀어주는 순간이었던 것이다.(동아일보의 일장기 말소 사건도 유명한 일화로 내려오고 있다.)

 해방 이후엔 당당히 태극기를 앞가슴에 달고서 서윤복이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처음 태극기를 달고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 탓인지 서윤복도 민족의 영웅이 되었다. 1950년 같은 대회에서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이 1,2,3위를 휩쓸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한국 마라톤이 기록 경신의 맥을 다시 이은 것은 1957년에 열린 보스턴 대회에서다.한국 대표로 참가했던 임종우가 2시간 24분 55초라는 기록을 작성했던 것. 손기정이 세운 기록을 35년만에 깬 것이다. 그 뒤 이창훈이 1958년 도쿄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 최고 기록을 48초 앞당기면서 우승을 했다. 아울러 그는 1959년 9.28 수복을 기념해 열렸던 인천~서울간 국제 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 24분 07초를 기록했다. 1962년에는 김연범이 43회 전국체전에서 2시간 23분 5초를 새 기록을 세웠고, 이상훈은 1963년 도쿄 올림픽 예선과 64년 18회 전국 선수권 대회에서 각각 2시간 21분 54초와 2시간 21분 25초로 2년 연속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김복래는 1965년 전국 선수권 대회에서 2시간 20분 19초로, 1966년엔 37회 동아 대회에서 2시간 19분 07초로 연거푸 신기록을 작성했다. 김복래 20분 벽을 깬 주인공이기도 하다. 62년부터 66년까지 5년 연속 최고 기록을 갈아치운 한국 마라톤은 이후 3년간 기록 행진이 주춤 했으나 1969년 제 50회 전국체전에서 박봉근이 2시간 18분 18초의 기록을 세우면서 기록 경쟁에 불을 붙였다.

 이 기록은 다음해 열린 제 41회 동아대회에 출전한 김차환에 의해 깨졌다. 김차환은 이 대회에서 2시간 17분 34초를 기록했고, 3년 뒤인 1973년 제 44회 대회에서도 자신의 한국 최고 기록을 33초 앞당기면서 우승을 차지했다. 1974년에는 한국 기록이 두 번이나 경신이 되었다. 조재형이 일본 교토 마라톤 대회에서2시간 16분 26초에, 제45회 동아 대회에서는 문흥주가 2시간 16분 15초의 기록을 세웠다. 이후 10년간 한국 마라톤은 침묵을 지켰다. 1982년 뉴델리 아시아 경기에서 김양곤이 우승을 차지한 것 외에는 기록 경신도 없었고,올림픽이나 세계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적도 내지 못했다.

 한국 마라톤이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1984년에 들어서면서 부터다. 그 해 3월에 열린 동아 대회에서 이홍렬이 2시간 14분 59초를 기록하면서 아슬아슬하게 15분 벽을 허물었다. 이 벽을 허문 덕에 그는 5천만원이라는 거금의 상금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그만큼 깨기 힘든 기록이었으리라. 15분의 벽이 허물어지자 뒤를 이어 1986년 유재성이 2시간 14분 06초, 1987년 이종희가 2시간 12분 21초로 12분 대에 진입한 국내 최초의 마라토너가 되었다.

 1990년대는 한국 마라톤이 아시아와 세계 무대를 석권한 황금기다. 90년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안 게임에서 김원탁이 우승을 차지했고, 90년 동아 대회와 91년 춘천 대회에서 김완기는 2시간 11분 34초와 2시간 11분 02초라는 신기록을 만들어 낸다. 같은 해 황영조는 91년 제41회 뱃부~오이타간 국제대회에서 '숙원의 10분 벽'을 깨고 당당히 2시간 08분 47초라는 기록을 세운다.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예선을 기해 열린 동아대회에서 김재룡과 김완기는 나란히 2시간 09분 30초와 31초를 마크. 국내코스에서 처음으로 9분대 진입에 성공을 했고, 황영조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세계를 제패했다. 황영조는 57년만에 손기정옹의 한을 풀어주면서 민족의 영웅으로 등극을 한다. 1994년에 두 차례에 한국 기록이 경신되었다. 김완기가 동아 대회에서 2시간 08분 34초를 세우자, 한달 뒤 황영조가 보스턴 대회에서 2시간 08분 09초를 수립하고,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마라톤 상식>

마라톤의 거리측정은

①마라톤 거리측정은 300m-1,000m정도의 강철로된 줄자를 사용하여 직선거리를 설정하여 한쪽에 10kg에 해당하는 당기는힘을 가하여 측정을 합니다,

②이렇게 측정한 거리를 존슨카운터를 부착한 자전거를타고 4회이상을 측정합니다.(존슨카운터:거리측정기)

③4회이상 측정한 수치를 평균으로 환산합니다.

④평균치를 구한다음 다시 자전거로 측정을 합니다.

-이와같이 측정하는 방법이 캘리브레이션(Calibration)측정이라합니다.

⑤트랙에서는 라인 외측으로 30cm 떨어져 측정을하고

⑥도로에서는 경계선 안쪽 30cm 지점을 측정합니다(로터리나,화단은 61cm 안쪽을 측정)

* 이렇게 측정을하여 공식 기록인정 코스가 탄생을 하는데 42,195km중 1,000/1에 해당하는 거리(42m) 오차는 공인을 인정하는데 42,195km 보다 1cm 라도 짧으면 공인이 안됩니다.

* 그래서 공인코스는 42,195보다는 길며 42m는 넘지 않습니다 (42m가 넘어도 공인코스가 아님)

우리가 마라톤코스를 42.195Km 라는 것은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옛날 페르시아와 아테네 전쟁때 아테네병사가 고곡에 승전보를 알리려고 전쟁터에서 달리기 시작하여 고국까지 달려간 거리가 마라톤거리라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그 거리는 약 38Km정도입니다. 그런데 왜 42.195Km인지는 모르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정확한 마라톤거리가 생기게된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옛날 아테네와,페르시아(현재 :이란)가 전쟁을 하였으며 이떄 아테네가 승리하였습니다.

이때 승리한 아테네 병사 1명이 고국에 승전보를 전하려고 달리기 시작하여 고국에 승리를 알렸습니다. 그리고 그 병사는 사망을 하였습니다.

그 병사가 달렸던 거리는 약38Km 였습니다. 그 후 그 병사를 기리는 마라톤대회는 38Km를 전, 후하여 매 대회떄마다 거리가 달리 시행하였습니다.

현재 42.195Km 대회가 된것은 영국 런던올림픽에서 영국의 국왕인 에드워드 7세(현 엘리자베스여와의 증조부) 가 건강이 좋지 않아 자신이 살고있는 웬저궁 발코니의 의자에서 볼 수 있도록 자신의 웬저궁 앞에서 출발을 하여 골인지점인 운동장까지는 42.195Km였습니다. 이후 올림픽등 모든 마라톤 종목이 42.195Km가 되었고 마라톤의 정식 거리가 되었습니다. 한편 아테네와 전쟁에서 패한 페르시아(이란)는 세월이 흐른 후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아시안게임을 유치하였는데 육상종목에서 마라톤종목을 빼고 실시하였습니다..

마라톤 레이스중 급수관련 전문지식을 알아보겠습니다.

-마라톤 대회에서 가장 중요한것중 하나가 물(급수) 입니다.

엘리트 선수 대회와 매니아 마라톤 대회와는 다소의 차이가 있지만 규정과 상식은 엘리트 대회를 많이 따르고 있습니다.

참가자에게 공급하는 물에는 스페셜음료와, 제너럴음료등 두가지의 종류가 있습니다.

①스페셜음료:참가하는 선수가 주최측에 음식물로 신청하여 제출한 음료로서 선수의 번호나 이름을 적어서 기본 음료수와 다른 테이블을 별도로 설치를 해 주어야 합니다.

②제너럴음료:주최측이 준비한 생수나 스포츠 음료로서 도핑테스트에 적합한지를 확인하고 준비 합니다

-달리는 도중 관중이 건내준 음료를 먹는일이 전에는 실격이었으나 요즘에는 허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샤워기처럼 물을 뿌려 주는데 이것도 허용되며 바가지를 들고 받아 먹는 것도 허용됩니다.

<경기의 유래>

마라톤 경기는 마라톤 전쟁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기원전 490년, 페르시아가 그리스의 아테네를 침공하였는데, 위급해진 아테네는 스파르타에 구원병을 요청하기로 하였다. 전령이었던 '피디피데스'가 스파르타로 달려갔으나, 스파르타는 구원 요청을 거절하였다. 아테네는 어쩔 수 없이 적은 수의 군인으로 페르시아군을 아테네에서 약 40킬로미터 떨어진 마라톤 평원에서 맞게 되었다. 여러가지 상황으로 볼 때, 분명히 패배할 것으로 생각되었던 아테네군이었지만, 모든 병사가 목숨을 걸고 써운 끝에 페르시아군을 무찔렀다. 전쟁에 이긴 소식을 아테네에 알리기 위하여 발 빠른 사람이 필요하였는데, 스파르타에 갔던 피디피데스가 다시 전령으로 뽑혔다. 그는 마라톤 평원에서 아테네까지 약 40여 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달려 아테네군의 승리를 알리고는 탈진한 나머지 그만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러한 이야기에서 마라톤 경기가 유래하였다.

이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를 기리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1896년,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제 1회 올림픽이 열릴 때 올림픽의 창시자인 쿠베르탱 남작이 마라톤을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하자는 의견을 받아들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최초로 열린 마라톤은 40 킬로미터 정도를 달렸는데, 달리기에 자신 있는 그리스 청년들이 많이 참가하였다. 이 대회의 우승자는 아테네 근교에 사는 루이스라는 청년이었는데, 3시간에 가까운 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마라톤 코스의 거리>

마라톤에서 지금과 같이 42.195킬로미터의 거리를 달리게 된 것은 1908년 제 4회 런던 올림픽 때부터이다. 이와 관련한 몇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그 중에서 하나를 살펴보기로 하자.

당시 올림픽 조직 위원회는 주경기장을 출발점으로 하는 42킬로미터의 코스를 설정하였으나, 스포츠를 매우 좋아했던 당시 영국 여왕 알렉산드라가 윈저궁의 발코니에 앉아서 선수들의 출발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해서 출발점을 윈저궁으로 변경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바뀐 거리가 42.195킬로미터였고, 그 이후 이것이 마라톤 경기의 공식 거리로 굳어 졌다고 한다.

마라톤 코스의 거리는 반드시 42.195킬로미터여야 하지만, 어느 정도의 오차는 인정된다. 그 오차는 전체 거리의 1천분의 1, 즉 42미터이다. 그런데 이 오차는 42.195킬로미터보다 짧아서는 안된다, 즉 1천분의 1의 오차는 허용되지만, 규정거리보다 긴 경우에만 인정된다. 42.195킬로미터보다 단 10 센티미터라도 짧으면 공식적인 마라톤 코스로 인정받지 못한다. 또, 이런 코스를 달린 기록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그 기록은 인정받지 못한다.

그렇다면 거리는 어떻게 측정할까? 42.195킬로미터의 거리를 측정할 때에는 강철로 만든 줄자로 하는 것이 원칙이나, 요즈음은 간편하게 기계를 사용하기도 한다. 거리를 측정할 때에는 도로변에서 차도쪽으로 30센티미터 지점을 기준으로 삼는다.

 

<마라톤 코스의 종류>

마라톤 코스는 길의 굴곡이나 경사, 폭 등에 제한이 없다. 가파른 언덕이 있을 수 있고, 급하게 도는 길도 있을 수 있다 선수들이 달리는 데에 방해가 되거나 장애가 되는 것은 피하되, 정해진 거리에만 맞으면 어떤 형태이든 상관없다. 마라톤 코스는 거리에 따라 나누어 지는데, 42.195킬로미터를 뛰는 풀 코스 마라톤과 21.0975킬로미터, 10킬로미터, 5 킬로미터 등을 뛰는 단축 마라톤, 풀코스보다 더 긴 거리를 뛰는 울트라 마라톤 등이 있다.

한편, 마라톤 코스를 출발점과 반환점, 도착점을 기준으로 나눌 수도 있다. 출발점과 도착점이 서로 다른 편도 코스, 출발점에서 반환점을 돌아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왕복코스, 출발점으로 다시 되돌아오기는 하지만 반환점이 없는 순환코스, 또 같은 코스를 여러 번 도는 주회 코스 등이 있다.

 

<마라톤 경기의 기록>

마라톤 경기는 뛰어야 하는 거리가 같다 해도 대회마다, 장소마다 조건이 똑같을 수 없기 때문이 '신기록' 이라는 용어는 쓰지 않는다. 후반에 가파른 언덕길이 있는 코스도 있고, 이작부터 끝까지 평탄한 코스도 있으며, 30도가 넘는 더위 속에서 달려야 할 때도 있고, 10도 안팎의 쾌적한 날씨에서 뛸 대도 있다. 그래서 마라톤에서는 신기록이라는 말 대신에 '최고 기록'이라는 용어를 쓴다. 그러므로 '세계 신기록'이라는 말 대신에 '세계 최고 기록'이라는 용어를 쓴다.

한편, 100 미터나 200미터 달리기는 근소한 차이로 등수가 결정되기 때문에 바람의 영향까지 고려해 1백분의 1초까지 측정한다. 그러나 마라톤은 그렇지 않다. 마라톤은 초 단위까지만 측정한다. 물론, 마라톤도 초기에는 1백분의 1초까지 쟀는데, 1960년 올림픽 때부터 10분의 1초, 1980년 올림픽 때부터는 초 단위까지만 측정하게 되었다.

마라톤 기록은 대회를 거듭할수록 단축되어, 2016년 1월 현재 마라톤 세계 최고 기록은 2013년에 개최된 베를린 마라톤 대회에서 케냐의 윌슨 킵상이 세운 2시간 3분 23초이다.

<마라톤 경기의 규칙>

각종 경기마다 지켜야 할 규칙이 있듯이, 마라톤 경기에도 규칙이 있다. 이 규칙을 간단히 정리하면 ,코스를 벗어나서는 안 되고, 반드시 자기의 힘으로 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몇가지 규칙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마라톤 경기는 포장된 공인 장거리 경주로를 달린다. 잔디 위나 부드러운 흙 위를 달리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주최자는 경주로의 거리를 일정한 킬로미터마다 표시하여 모든 경기자가 알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주최자는 출발점으로부터 5킬로미터 지점마다 급수대를 설치하여야 한다. 각 급수대에는 경기자가 손쉽게 집을 수 있도록 음료수를 놓아 둔다. 물론 음료수는 경기자 자신이 직접 먹어야 한다. 경기자는 달리는 도중에 어느 누구의 어떤 도움도 받아서는 안 된다.

<마라톤 대회에 참여하기>

국내에서 열리는 각종 마라톤 대회에는 마라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코스가 마련되어 있다. 보통 풀코스의 경우에는 연령 등을 제한하지만, 그 외에는 특별한 참가 제한이 없다.

언론사나 지방 자치 단체, 또는 마라톤 동호회에서 주최하는 마라톤 대회가 국내의 여러 지역에서 계절마다 열린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할 때에는, 자기의 건강사애등을 점검하고 자기가 뛸 수 있는 거리를 정하여 신청을 한다. 그리고 그 거리를 완주할 수 있도록 연습을 충분히 하는 것이 좋다.

보통, 마라톤 경기에 참가하여 완주하면, 완주 기록이 적혀 있는 완주증과 함께 완주 기념 메달과 기념품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