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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활동

중국고대 문인들의 삶과 글 4: 당신이 심은 비파나무는(2021.06.09)

by 도화유수 2021. 6. 14.

귀유광(1507~1571)의 오래된 문간방(項脊軒志)에 글 중에서 비파나무

고계[高啓](1336 ~ 1374)

요약] 중국의 원말(元末)·명초(明初)의 시인. 근체시(近體詩)에서는 주로 강남의 수향(水鄕:강·호수 등 물이 많은 지방)의 풍물을 담백하게 노래했고, 고체(古體)에서는 역사나 전설에서 취재한 낭만을 노래하였다. 대표작인《청구자가(靑邱子歌)》는 분방한 환상을 엮어 나가면서 시인의 사명을 노래한, 중국문학사상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자 계적(季迪), 호 청구자(靑邱子). 쑤저우[蘇州] 출생. 생애의 대부분을 원나라 말기의 내란시대에 보냈으며, 명나라의 통일 후 잠시 난징[南京]에서 취직한 외에는 쑤저우에서 소지주(小地主)로서 생활하였다. 명태조(明太祖)의 공신배제정책(功臣排除政策)의 여파로 39세에 살해되었다. 전원생활을 사랑하는 자유인이었으며, 원송(元宋) 이후의 중국에 대두한 시민층의 한 전형이었다.

그의 시는 다양하지만 대체로 싱싱하고 경쾌하며 또 평이하다. 근체시(近體詩)에서는 주로 강남의 수향(水鄕:강·호수 등 물이 많은 지방)의 풍물을 담백하게 노래했고, 고체(古體)에서는 역사나 전설에서 취재한 낭만을 노래하였다.

대표작인 《청구자가(靑邱子歌)》는 분방한 환상을 엮어 나가면서 시인의 사명을 노래한, 중국문학사상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고소잡영(姑蘇雜詠)》(132수)은 유서 깊은 고도(古都) 쑤저우의 명승고적에 붙여서 쓴 시를 모은 것으로, 사실(史實)과 전설과 자연미와 환상을 섞어 짠 작품이다.

이 밖에 《고청구시집(高靑邱詩集)》(19권)과 사집(詞集)인 《구현집(扣舷集)》(1권)이 전한다. 《고청구시집》에 실려 있는 대표작의 하나인 《심호은군(尋胡隱君)》에 그의 시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渡水復渡水(물을 건너고 또 물을 건너) 看花還看花(꽃을 보며 다시 또 바라보면서) 春風江上路(봄바람 부는 강가 길을 걸어가노라니) 不覺到君家(어느새 그대 집에 다다랐도다)."

귀유광[歸有光](1506 ~ 1571)

요약] 당송(唐宋)의 시문을 규범으로 삼는 당송파의 저명한 문인이었던 중국 명나라 때의 문학자. 유명한 글로는 《선비사략(先妣事略)》,《사자정기(思子亭記)》등이 있는데 부한 정감이 쏟아져 나오는 점에서 명대적(明代的) 개성을 강하게 띠면서도 사실감을 지니고 있다.

자 희보(熙甫). 호 진천(震川). 장쑤성[江蘇省] 쿤산현[崑山縣] 출생. 60세 때 진사(進士)가 되었으며, 그때까지는 고향에서 사숙(私塾)을 열어 수백 명의 제자들을 길러내었다. 명나라 초기의 문단은 진한(秦漢)의 문장을 모방하는 복고파(復古派)가 차지하고 있었는데, 후에 당송(唐宋)의 시문을 규범으로 삼는 일파가 일어났으며, 그는 모곤(茅坤)과 더불어 이 당송파의 저명한 문인이었다.

유명한 글로는 《선비사략(先妣事略)》 《사자정기(思子亭記)》 등이 있는데, 모두 과거를 회상하고 가까웠던 사람들을 애도하는 산문으로, 저절로 우러나온 진지한 감정이 독자의 심금을 울린다. 그의 산문은 풍부한 정감이 쏟아져 나오는 점에서 명대적(明代的) 개성을 강하게 띠면서도, 한유(韓愈) ·유종원(柳宗元) ·소동파(蘇東坡)의 산문이 가진 높은 밀도에 뒤지지 않는 사실감을 지니고 있다. 저서로 《진천문집(震川文集)》(40권) 등을 남겼다.

이탁오[李卓吾](1527 ~ 1602)

요약] 명나라의 사상가. 유교적 권위에 맹종하지 않고 자아중심의 혁신사상을 제창하였다. 금욕주의·신분차별을 강요하는 예교(禮敎)를 부정하며 남녀평등을 주장했다. 반(反)유교적이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아 죽었다.

1527년 10월 명나라 천주부(泉州府) 진강현(晉江縣)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상업에 종사 하였는데 원나라 때 선조들은 해상무역, 통역관 등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원나라가 멸망하고 명나라가 들어서면서 주원장은 쇄국정책으로 나라의 문호를 닫아버렸다. 명분은 해상에 출몰하는 왜구를 막고, 북으로는 오랑캐의 침입을 막는다는 것이었지만 중국은 세계적인 조류에서 뒤쳐지는 계기가 되었다. 무역의 길이 막히자 이지(李贄)의 집안은 가난을 면치못하게 되었다. 이지의 초명은 임재지(林載贄)였으나 장성하여 종가의 성(姓)을 따라 이지(李贄)라고 개명했다. 별호로는 굉보(宏甫), 탁오자(卓吾子), 이화상(李和尙), 독옹(禿翁), 백천거사(百泉居士)이다. 집안의 어려운 살림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지역을 전전하다 관직에 나아가는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마침내 1552년 26세에 푸젠성에서 치러진 향시에 응시하여 거인(擧人)에 합격하였다.

1556년 하남 휘현 교유로 임명되었다가 1560년 남경 국자감 교관으로 발탁되었으며 1561년에는 왜구가 쳐들어오자 동생과 조카 등과 함께 수비를 하였다. 1564년 북경 국자감 박사로 임명되었다. 이지(李贄)는 1547년에 황씨 여성과 혼인하여 장남, 차남을 두었으나 어려서 둘다 죽었고 차녀와 막내딸도 1565년에 죽었으며 남은 자식은 큰딸만 남았다. 이때부터 노장사상에 관심을 가졌으며 당시 유교적 권위에 맹종(盲從)하지 않고 자아(自我) 중심의 혁신사상을 제창한 왕양명(王陽明)의 양명학(陽明學)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양명학의 분파(分派)인 태주학파(泰州學派)에 속했는데, 금욕주의·신분차별을 강요하는 예교(禮敎)를 부정하고, 인간성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본능(本能)을 긍정하였다.

1572년 남경 형부주사로 임명되었으며 1576년에는 중국 서부지역인 운남요안지부(雲南姚安府知事)로 임명되었다. 운남(雲南)은 이지에게 많은 영향을 준 지역으로 이곳에서 더이상 관직을 맡지 않을 것이라 결심하고 1580년 사직하였다. 그는 운남을 여행하며 여생을 보내려고 의도하였다가 가족의 반대로 황안(黃安)가게되었다. 이곳에서 독서와 저술에 매진하였지만 고립된 황안에서 지내기 보다는 여러 석학들을 만날 수 있는 마성으로 갔다. 가족을 고향으로 보내고 홀로 마성에서 기거하며 자신의 사상을 전개하였다. 유교적 전통과 배치되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와 행복이 중요하며 그에 합당한 처세를 주장하였다. 유교로 인해 사람은 타고난 품성을 상실하게 되었고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위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자기의 길을 가도록 힘써야 한다는 개인행복론을 펼쳤는데 유생들이 그에게 공감하며 따르게 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이지의 사상에 시비와 비판이 일어나 사상적 이단으로 몰리게 되었다. 그때문에 비교적 유교적 교리에서 자유로운 불교 승려로 처신하기 위해 머리를 삭발하였다.

1589년 마성 용담(龍潭)에 있는 사찰인 지불원(池佛院)에 기거하였고 대표적인 저작인 《장서(藏書)》,《분서(焚書)》(6권), 《설서(說書)》등을 저술하였다. 이지는 공자(孔子)의 시비(是非)의 판단도 현재의 기준은 되지 않으므로, 사람들은 각각 자기의 시비기준을 가져야 한다고 하며 독자적인 사론(史論)을 전개하였다. 또한 성현의 유교경전이 가리고 있는 장막을 걷어내고 천년을 내려온 고정된 관념을 뒤집어 옛사람들의 울분을 토해내고 후세를 위해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한다고 했다. 그의 동심설(童心說)은 '독서견문(讀書見聞)'으로 물들지 않은 아동의 맑고 깨끗한 마음을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고 간주하는 것이며, 도가적(道家的)인 자연 그대로의 인간의 마음이 존중되어야 하고, 인욕(人慾)은 가식 없이 그대로 긍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남녀평등론'을 주장하였는데 사람은 남녀가 다르지만 눈으로 보는 것에는 남녀가 차이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1595년 마성을 떠나 산서성 심수(沁水)에 머물며 개인의 타고난 재주에 따라 이루어지는 자유경쟁은 하늘의 도(道)라고 주장한 《도고록》을 저술하였다. 1597년에는 북경 서산 극락사에서 기거하였다가 이듬해 남경으로 가서 인물역사서인《장서(藏書)》(68권)를 출간하였다. 1599년에는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선교사 마테오 리치를 만났으며 이후에도 그와 두차례 더 만나면서 천주교리를 접했다. 이탁오는 마테오 리치의 인품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의 천주교교리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해 가을 마성으로 돌아갔다가 쫗겨났으며 그의 반유교적(反儒敎的)인 성향 때문에 본격적인 박해를 받기 시작했다. 1601년 북동주에 거처를 정하였다가 1602년 장문달(張問達)의 탄핵을 받아 체포되었으며 그해 3월 감옥에서 자결하였다. 사후 1602년 《구정역인(九正易因)》, 《계중팔절(系中八絶)》이 출간되었으며 1612년 《이탁오선생유서》, 1618년 《속분서(續焚書)》가 출간되었다. 하지만 1625년 그의 저서는 모두 금서로 처분되었다. 주요저서 : 《분서》(6권), 《장서》(68권)

  

 

서위[徐渭](1521 ~ 1593)

명 정덕 16. 2. 4~만력 21(1521~1593). 중국 명대의 문인. 자는 문청(文淸), 후에 문장(文長)이라고 고쳤다. 일설에는 자는 천지(天池), 호는 청등(淸藤), 천지생(天池生), 전수월(田水月)등. 저장성 산음(山陰)사람. 시문, 서화를 잘하고, 희곡도 지었으며, 희곡 연구로도 유명하다. 총독 호종헌(胡宗憲)의 막하에 들어 『백록표』(白鹿表)를 기초해서 유명해 졌고, 또 병술(兵術)로도 명성을 떨쳤다. 뒤에 호종헌이 투옥되었기 때문에, 서위는 발광하여 자살미수 소동을 일으켰고 또 처를 죽여 투옥되기도 하였다. 스스로, 서예가 제일, 시가 제이, 문상이 제삼, 그림은 제사라 하였고, 서는 초서를 잘했으며, 미불(米芾)을 배웠고, 필세는 분방 기이하여 문징명(文徵明), 왕총(王寵)보다도 한수 위라고 평한다. 그림은 산수, 화훼, 초충 등을 주로 그렸으나, 특히 화훼화가 뛰어나고, 오진(吳鎭) 심주(沈周)로 이어지는 계통에 있으면서, 그와는 다른, 묵색이 아름다운 수묵, 화훼, 잡화를 그려, 진계유(陣繼儒), 팔대산인(八大山人)등 근세의 문인 및 묵희(墨戲)에 현저한 영향을 끼쳤다. 대표작은 『화과도권』(花果圖卷), 저서에 『서문장집』(徐文長集), 『현초류적』(玄鈔類摘)이 있다.

김성탄[金聖嘆](미상 ~ 1661년)

명말청초 때 강남(江南) 오현(吳縣) 사람. 원래 이름은 채(采)고, 자는 약채(若采)다. 청나라에 들어 이름을 인서(人瑞)로 고쳤고, 자를 성탄이라 했다. 명나라 때 제생(諸生)이 되었다. 살던 곳의 이름은 관화당(貫華堂) 또는 창경당(唱經堂)이라 했다. 평생 관직에 오르지 않고 관리들의 폭정에 항의하다 처형되었는데, 당시 나이는 50, 60살로 추정된다. 『이소(離騷)』와 『장자(莊子)』, 『사기(史記)』, 『두시(杜詩)』, 『수호지(水滸志)』, 『서상기(西廂記)』 등에 대해 각각 비평을 하여 성탄육재자서(聖嘆六才子書)로 내놓음으로써 문학으로 간주되지 않았던 희곡과 소설을 정통문학과 구별하지 않고 다루었다.

당시(唐詩)와 고문(古文)에 대한 선본(選本)도 남겼다. 순치(順治) 18년(1661) 청나라 세종(世宗)이 죽은 이후 지현(知縣) 임유초(任維初)가 탐학(貪虐)을 자행하자 제생 예용빈(倪用賓) 등과 함께 문묘(文廟)로 나가 통곡했다가 순무(巡撫) 주국치(朱國治)로부터 “선제의 영령을 흔들어 놀라게 한다.(震驚宣帝之靈)”고 하여 남경에서 참수 당했다. 그 밖의 저서에 『침음루시초(沈吟樓詩鈔)』가 있다.

김성탄 불역쾌재 삼십삼칙 [金聖嘆 不亦快哉 33則 ]

其一:夏七月,赫日停天,亦無風,亦無云;前後庭赫然如洪爐,無一鳥敢來飛。汗出遍身,縱橫成渠。置飯于前,不可得吃。

呼簟欲臥地上,則地濕如膏,蒼蠅又來緣頸附鼻,驅之不去,正莫可如何,忽然大黑車軸,疾澍澎湃之聲,如數百萬金鼓,

檐溜浩于瀑布,身汗頓收,地燥如掃,蒼蠅盡去,飯便得吃。不亦快哉!

1. 때는 7월의 어느 무더운 날, 태양은 중천에 떠 있고, 산들바람은 잠들었으며

구름은 한 점도 보이지 않는다. 앞뜰이나 뒤뜰도 마치 난로 속과 같다.

날던 새도 그림자를 감췄고, 온몸에서 땀이 폭포처럼 쏟아진다.

점심 식사를 하려 했으나 무더위 탓에 젓가락은 들 마음조차 내키지 않는다.

그래서 돗자리를 가져다 마당에 깔고 그 위에 벌렁 드러눕는다.

그렇지만 돗자리는 녹녹하고 파리들은 얼굴에 날아와 앉아, 쫓아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쯤 되고 보면 나는 도저히 속수 무책이다.

그 때 갑자기 천둥이 우르릉 꽝꽝 울리고 먹장같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전쟁터로 향하는 대군처럼 당당하게 밀어닥친다.

이윽고 처마에서 빗물이 우르르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면 땀이 들고 땅으로부터 후덥지근하던 열기도 사라지고,

파리들은 어디론가 날아가 숨어버렸고 이제야 비로소 밥을 먹을 수 있게 된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냐.

其一:十年別友,抵暮忽至。開門一揖畢,不及問其船來陸來,並不及命其坐床坐榻,便自疾趨入內,卑辭叩內子:

“君豈有斗酒如東坡婦乎?” 內子欣然拔金簪相付。計之可作三日供也,不亦快哉!

십년별우。저모홀지。개문일읍필。불급문기선래육래。병불급명기좌상좌탑。변자질추입내。비사고내자。

군기유두주여동파부호。내자흔연발금잠상부。계지가작삼일공야。불역쾌재!

2. 10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가 갑자기 해질녘에 찾아온다.

문을 열고 그를 맞이해서,배를 타고 왔느냐 육로로 왔느냐 묻지 않고,

침대에 눕겠는냐 소파에 앉아서 쉬겠느냐도 묻지않고,

우선 거실로 가서 조심스럽게 마누라에게 이렇게 말한다.

"소동파의 마누라처럼 술을 잔뜩 사다 주지 않을려우?”

그러면 아내는 선뜻 금비녀를 뽑아,”이것을 팝시다.”하고 말한다.

우선 사흘 동안은 넉넉히 마실 수 있다는 계산이 앞선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其一:空齋獨坐,正思夜來床頭鼠耗可惱,不知其戞戞者是損我何器,嗤嗤者是裂我何書。

心中回惑,其理莫錯,忽見一狻貓,注目搖尾,以有所睹。斂聲屛息,少復待之,則疾趨如風。

3. 아무도 없는 방에 나는 넋을 놓고 앉아 있다.

그러면 베개맡에 쥐란 놈이 나타나서 제법 성가시게 군다.

도대체 무엇을 갉고있는지 달그락닥그락 요란스럽다.

내 책 중의 어느 것을 쏠고 있는 걸까.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궁리하지도 못한 채 있으려니,

대뜸 무서운 얼굴 표정으로 고양이가 뭔가를 노리는 듯

꼬리를 흔들며 눈을 크게 뜨고 다가온다.

나는 옴쭉달싹 안 하고 숨을 죽인 채 잠시 동안 기다린다.

그러면 쥐는 바삭소리를 내며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랴.

其一:于書齋前,拔去垂絲海堂紫荊等樹,多種芭蕉一二十本。不亦快哉!

4. 서재 앞의 해당화와 박태기나무를 뽑고,

그자리에 열 포기 스무 포기의 푸릇푸릇한 파초를 심는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닌가.

其一:春夜與諸豪士快飮,至半醉,住本難住,進則難進。

旁一解意童子,忽送大紙炮可十余枚,便自起身出席,取火放之。

硫磺之香,自鼻入腦,通身怡然,不亦快哉!

5. 봄날 밤에 정다운 친구들과 잔을 주거니받거니 나누어 어지간히 취한다.

잔을 놓기는 싫지만 더 이상 마시는것도 괴롭다.

그러자 기분을 알아챈 동자가, 열 두서너 개의 큰 폭죽을 담은 바구니를 서둘러 갖고 온다.

나는 탁자에서 일어나 뜨락으로 나가 폭죽을 터뜨린다.

유황냄새가 코를 찌르고, 머리를 자극해서 온 육신이 무척이나 기분좋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닌가.

其一:街行見兩措大執爭一理,皆目裂頸赤,如不戴天,而又高拱手,低曲腰,滿口仍用者也之乎等字。

其語刺刺,勢將連年不休。忽有壯夫掉臂行來,振威從中一喝而解。不變快哉!

6. 거리를 걷고 있자니, 두명의 불량배가 무언가 심하게 다투고 있다.

얼굴은 벌겋게 피가끓고, 눈에는 분노가 번뜩여서 마치 불구 대천의 원수와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서로간에 예의만은 갖추고, 팔을 쳐든다거나 허리를 굽히며 절까지 하면서,

'댁에서는' 이라든가 '댁을',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는 않되겠지요' 라는 둥

매우 점잖고 거창한 말을 쓰고 있다. 그 시비는 그칠 줄을 모른다.

그곳으로 갑자기 하늘을 찌를 듯한 건장한 사나이가 팔을 휘두르며 다가와서는

커다란 소리로 ’집어치워!’하고 외친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랴.

其一:子弟背誦書爛熟,如甁中瀉水。不亦快哉!

7. 넘치는 물이 출렁이듯 제 자식들이 옛글을 줄줄 외고 있다. 그것을 차분히 들어본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랴.

其一:飯後無事,入市閒行,見有小物,戲復買之,買亦已成矣,所差者至甚少,而市兒苦爭,必不相饒。

便掏袖下一件,其輕重與前値相上下者,擲而與之。市兒忽改笑容,拱手連稱不敢。不亦快哉!

8. 식사를 마치고 심심파적으로 근처에 있는 가게를 찾아가, 사소한 물건을 사려고 한다.

잠시 동안 흥정을 하면서 좀더 값을 깎으려 한다. 좀더 깎으려고 흥정을 계속하지만,

점원 아이는 좀처럼 깎아 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물건을 소맷자락에서 꺼내어 점원아이에게 내준다.

그러자 점원 아이는 대뜸 미소를 지으면서,공손하게 인사하며 말한다.

“오, 어른께서는 정말 성품이 훌륭하신 분이군요.”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其一:飯後無事,翻倒敝篋,則見新舊逋欠文契不下數十百通,其人或存或亡,總之無還之理。

背人取火拉雜燒淨,仰看高天,蕭然無云。不亦快哉!

9. 식사 후의 무료한 때에, 헌가방을 열고 그 안을 이리저리 뒤적인다.

그러면 우리집에서 돈을 꾸어간 사람들의 수십,수백 장의 차용 증서가 나타난다.

꾸어간 사람 중에는 고인이 된 이도 있고, 또한 살아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여하튼 빚을 갚아 줄 가망은 없다.

나는 슬그머니 그것을 다발로 묶어 불을 지피고는 하늘을 쳐다보며

연기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바라본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其一:夏月科頭亦足,自持涼傘遮日,看壯夫唱吳歌,踏桔槹,水一時涌而上,譬如翻銀滾雪。不亦快哉!

10. 어느 여름날, 모자도 없이 맨발로 문 밖으로 나가서, 젊은이들이 물레방아 발판을 밟으며

쑤저우의 민요를 부르는 것을 양산을 쓴 채 듣고 있다. 논의 물은 녹은 백은이나,

녹은 흰눈처럼 거품을 일으키며 흘러흘러 물레방아에 의해 퍼올려진다.

아아, 이것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其一:朝眠初覺,似聞家人嘆息之聲,言某人夜來已死,急呼而訊之,正是一城中第一絶有心計人。不亦快哉!

11. 아침에 눈을 뜨자 간밤에 어디서 누가 죽었다고 집안 사람들이 수군수군 이야기하는 눈치다.

나는 대뜸 누가 죽었느냐고 집안 사람에게 묻는다.

그래서 죽은 사람이 마을에서 가장 구두쇠로 소문난 영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其一:夏月早起,看人于松棚下,鋸大竹作筒用。不亦快哉!

12. 여름날 아침에, 이찍 잠을 깨니 소나무 시렁 밑에서

커다란 대나무를 물통으로 쓰려고 켜고 있는 것이 보인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其一:重陰圍月,如醉如病。朝眠不起,忽聞眾鳥畢作弄晴之聲,急引手褰帷,推窗視之,日光晶熒,林木如洗。不亦快哉!

13. 한달 내내 장마로 지새면서 주정뱅이나 병자처럼 늘 잠만 자자니 이젠 일어나기조차 귀찮다.

그러자 창밖에서 비가 그친 것을 알려 주는 새소리가 들려 온다.

나는 서둘러 침실의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밀어서 연다.

그러면 햇빛이 쨍쨍 비치고 나무들은 금새 목욕을 마친 듯 신선하다.

아아, 이것 또한 즐겁지 아니하랴.

其一:夜來似聞某人素心,明日試往看之。

入其門,窺直閨,見所謂某人,方鋸案面南看一文書,顧客入來,默然一揖,便拉袖命坐曰:

“君旣來,可亦試看此書。”相與歡笑。日影盡去,旣已自飢,徐問客曰:“君也飢耶?”不亦快哉!

14. 한밤에 누군가 먼 곳에서 나에 관해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음날 나는 그 사람을 찾아 나선다. 그 집에 들어가 거실을 보니

본인은 남쪽을 향해 책상에 앉아 무슨 기록인가를 읽고 있다.

내 모습을 발견하자 대뜸 인사를 하고는 내 소맷자락을 당겨 그 자리에 앉게 하고,

“때마침 잘 왔네, 자아 이것을 읽어 보게나,”하고 권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웃음을 나누며 담벼락 끝으로 석양이 사라질 때까지 즐겁게 담화를 나눈다.

이윽고 친구는 시장기를 느꼈는지 내게 조용히 말한다.

“자네도 시장할 테지.”

아아, 이것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其一:本不欲造屋。偶得閒錢,試造一屋,自此日爲始,需木,需石,需瓦,需磚,需灰,需釘,無 晨無夕,不來聒于兩耳。

乃至羅雀掘鼠,無非爲屋校計,而又都不得屋住。旣已安之如命矣。忽見一日屋竟落成,刷牆掃地;糊窗掛面。

一切匠作出門畢去,同人乃來分榻列坐。不亦快哉!

15. 제 집을 짓겠다고 진지하게 생각한 일도 없는데, 뜻밖에 얼마간의 돈이 생겼기에,

집을 짓게끔 되었다. 그 뒤로부터는 온종일을 재목을 사러 다닌다.

나는 그런 것들을 파는 거리를 찾아서 쏘다닌다.

그게 다 집을 짓기 위한 것이니 그리하지만,

그렇다고 그 동안에 새로 지은 집에 사는 것도 아니다.

마침내 그런 일을 포기해 버리고 싶어진다. 이윽고 그러던 어느 날 겨우 집이 완성된다.

벽에는 마지막 덧칠을 하고 마루는 산뜻하게 닦여지고, 문짝에는 종이를 바르고,

벽에는 서화를 건다. 일꾼들은 모두 물러가고 친구들이 찾아와서,

잘 정돈되어 여기저기 놓인 의자에 걸터앉는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이 아니겠는가.

其一:冬夜飮酒,轉復寒甚,推窗試看,雪大如手,已積三四寸矣。不亦快哉!

16. 겨울밤에 술을 마시고 있는 동안에 문득 방 안이 매우 추워진 것을 느끼게 된다.

창을 열고 내다보니,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면서 땅 위에는 이미 10센티 이상이나 쌓이고 있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닌가.

其一:夏日于朱紅盤中,自拔快刀,切綠沉西瓜。不亦快哉!

17. 여름 날 오후, 새빨간 큰 소반에 새파란 수박을 올려 놓고 잘 드는 칼로 자른다.

아아, 이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其一:久欲爲比丘,若不得公然吃肉。若許爲比丘,又得公然吃肉。則夏月以熱湯快刀,淨割頭發。不亦快哉!

18. 나는 오래 전부터 승려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다.

그러나 육식을 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망설이고 있던 차에 승려가 된 다음에도

마음껏 육식을 해도 무방함을 허락받았다 치자.

과연 그렇게 된다면 양동이에다 물을 가득히 끓인 다음 잘 드는 면도칼로 삭발을 한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其一:存得三四癩瘡于私處,時呼熱湯關門澡之。不亦快哉!

19. 몸의 이상스런 곳에 약간의 습진이 생겼기 때문에, 문을 꽉 닫아 걸고, 이따금씩 뜨거운 김을 쐬 주거나 한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其一:篋中無意忽檢得故人手蹟。不亦快哉!

20. 가방 속에서 우연히 옛 친구들의 자필 편지를 발견한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其一:寒士來借銀,謂不可啓齒,于是唯唯,亦說他事。

我窺見其苦意,拉向無人處,問所需多少,急趨入內,如數給與,然而問其必當速歸料理是事 耶?

或尙得少留共飮酒耶?不亦快哉!

21. 어떤 가난한 선비가 돈을 꾸러 온다.

그러나 얘기를 터놓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면서 화제를 딴 곳으로 돌리려고 한다,

얼마나 괴로우랴 싶어 단둘이 만 있을 곳으로 데리고가, 얼마가 필요하냐고 물어본다,

그러고 나서 방으로 돌아와 돈을 건네 주고, 건네 준 다음에 다시 이렇게 묻는다.

“자네는 지금 당장 가서 문제를 처리해야만 하겠나?”

"자 좀더 있으면서 한 잔 나누고 가는 게 어떻겠나?"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其一:坐小船,遇利風,苦不得張帆,一快其心。忽遇舸疾行如風,試伸挽之,聊復挽之,不意挽之便著。

因取纜,纜向其尾,口中高吟老杜“靑惜峰巒過,黃知桔柚來”之句,極大笑樂。不亦快哉!

22. 여기는 쪽배안이다. 시원한 바람이 상쾌하게 불어 오지만, 배에는 돛이 없다.

그러자 대뜸 돛배가 나타나서 바람처럼 빠르게 다가온다.

나는 그 배에 접근하여 갈고리 쇠를 걸려고한다. 요행히 제대로 걸렸다,

그래서 상대방 배에다 밧줄을 던져 그 배가 끌어 주도록 부탁한다.

그러고는 두보의 시를 읊기 시작한다.

“푸른빛은 뾰죽뾰죽한 산봉우리를 애처럽게 여기게 하고(靑惜峯巒)

누른빛은 귤과 유자가 달려 있음을 알려주네(黃知橘柚).” 하면서 호탕하게 웃기 시작한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其一:久欲覓別居與友人共住,而苦無善地。

忽一人傳來云有屋不多,可十余間,而門臨大河,嘉樹蔥然。便與此人共吃飯畢,試走看之,都未知屋如何。

入門先見空地一片,大可六七畝許,異日瓜菜不足復慮。不亦快哉!

23. 한 친구와 함께 살 집을 찾아나섰으나 적당한 집을 찾을 길 없다.

그러던 차에 누가 찾아와서 알맞은 집이 있다고 한다.

그다지 크지도 않고, 방이 열 두어 개가 있으며,

강변에 있는 데다 아름다운 나무로 둘려싸여 있다고 한다.

나는 그 사람에게 저녁 식사를 권하고 식사가 끝난 다음에,

어떤 집인가를 궁금히 여기지도 않고, 살펴보기 위해 따라 나선다.

문 안으로 들어서자 커다란 공터가 있고,곡물 곡간이 예닐곱 개나 된다.

그곳에 서서 나는 내심으로 말했다.

‘이제는 야채며 호박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구나.’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其一:久客得歸,望見家門,兩岸童婦,皆作故鄕之聲。不亦快哉!

24. 나그네가 긴 여행길에서 돌아온다.

정들었던 성문이 보이고 강의 양쪽 기슭에서 여자들이며 아이들이 제 나라말을 지껄이고 있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其一:佳磁旣損,必無完理。反復多看,徒亂人意。因宣付廚人作雜器充用,永不更令到眼。不亦快哉!

25. 옛날의 자기 그릇이 깨진다면 도저히 본래처럼 다시 만들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깨어진 그릇을 이리저리 젖혀 보며 살피노라면 사뭇 화가 나는 법이다.

이런때에는 그 그릇을 요리사한테 넘겨 주고, 다른 헌 그릇과 함께 쓰도록 일러준다,.

그러나 일단 깨어진 그 그릇을 다시금 내 눈에 띄지않게 하라고 명한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其一:身非聖人,安能無過,夜來不覺私作一事,早起怦怦,實不自安。

忽然想到佛家有布薩之法,不自覆藏,便成懺悔。因明對生熟眾客,快然自陳其失。不亦快哉!

26. 나는 성인 군자가 아니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가 없다.

밤에 무언가 잘못을 저지르면, 아침에 일어난 후에 그 때문에 몹시 우울해한다.

그때 문득 생각나는 것은,

‘잘못했음을 숨기지 아니함은 참회와 같도다’라고 하는 불교의 가르침이다.

그래서 나는 모르는 사람이거나 옛 친구이거나 주변의 사람들 모두에게

스스로의 잘못을 말해 준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其一:看人作擘窠大書,不亦快哉!

27. 아래 위로 30센티쯤 되는 커다란 글씨를 누가 쓰고 있다.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其一:推紙窗放蜂出去,不亦快哉!

28. 창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방 안에서 꿀벌을 몰아낸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其一:做縣官,每日打鼓退堂時,不亦快哉!(呵呵~的確很爽)

29. 현관(縣官)에게 북을 치게 해서 퇴당(退堂) 때를 알려 주게 한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其一:看人風箏斷,不亦快哉!(幸栽樂禍?)

30. 누군가가 날리던 연실이 끊어진다. 그것을 지켜본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其一:看野燒,不亦快哉!(看熱鬧心理)

31. 초원에서 들불이 일어 타오르고 있다. 그것을 바라본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其一:還債畢,不亦快哉!

32. 빚진 돈을 모두 갚는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其一:讀《虯髥客傳》,不亦快哉!

33. "규염객전"을 읽는다.

아아, 이것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 중국인의 이름은 김성탄이며, 17세기에 살았던 위대한 인상파 평론가로서,

<서상기>"西廂記" 라는 희곡을 논평한 가운데서 33절에 이르는 유쾌한 한때라는 것을

차례차례 예를 들고 있다.

이 글들은 어느 때, 그가 한 친구와 비에 길이 막혀서 열흘 동안 절에 갇혀 있었을 때

둘이서 꼽아본 것이다. 위 33절은 인간의 정신이 관능과 빈틈없이 결부되어서

인생의 참다운 유쾌함을 맛볼 수 있는 한때라고 그는 생각하는 것이다. --- 임어당 [생활의 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