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사태로 모든 활동이 중지된 이 때에 그동안 묵혀두었던 숙제(그동안 여행기록의 포스팅하여 보관하는 작업)를 하게 되었다. 이번 작업은 실크로드 여행 이야기이다.
2004년 여름방학 때 대진대학교의 초청여행으로 대장정에 올랐다.
실크로드 여행 4일차 2004.08.06(금)---양관, 옥문관
아침식사후 투루판역에서 열차로 돈황으로 출발한다. 그당시 열차는 우리의 무궁화 수준이지만 그당시 중국에서는 국내의 최신형 열차라고 한다. 왜냐하면 신강위구르자치구를 아우르기 위해서라고 하고 열차타는데 검색대를 거치고 거의 비행기타는 것보다 보안이 철저했다. 그러다보니 나의 손실이 있었다. 가방에 투루판 특산물로 칼이 좋다고 해서 3개를 기념으로 사서 가방에 두었는데 졸면서 검색하던 검색원이 그 순간만 눈을 뜨고 발견해서 압수한다. 가이드를 통해 기념품이라고 항번해도 소용이 없었다.
돈황역에 내려서 버스로 시골마을 같은 곳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어제 밤에 몇년 만에 큰비가 왔다고 한다.
돈황에는 큰 관문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양관(陽關)이고 다른 하나는 옥문관(玉門關)이다. 지도상으로 보면 양관은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쪽이고 옥문관은 북쪽이다. 난주, 주천, 가욕관을 거쳐 이어온 실크로드는 돈황을 지나면 옥문관 쪽과 양관 쪽으로 갈라진다. 타클라마칸 사막 길을 지나는 실크로드를 천산남로라고 한다. 천산남로는 세 갈래의 길로 나뉜다. 서역북로, 서역중로, 서역남로가 그것이다.
옥문관을 나서면 길은 누란, 쿠처를 거쳐 카슈카르로 이어진다. 이 길이 천산 남로의 서역 중로에 해당된다. 돈황에서 바로 북쪽으로 길을 잡으면 하미, 선선, 트루판, 우루무치로 이어져 천산산맥의 남쪽 기슭을 따라가는 서역 북로다. 양관을 지나면 길은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쪽을 따라 차말, 호전을 거쳐 카슈카르로 이어진다. 이 길은 서역 남로다. 그동안 내가 여행한 길은 옛 실크로드의 길로 치면 서역 중로에 북로의 일부가 섞인 길에 해당된다.
둔황 만리장성 양관(陽關)과 양관박물관
중국 둔황에 있는 한대(漢代) 만리장성 관문인 양관(陽關)이다. 한 무제 때 흉노를 공략하기 위해 하서사군(河西四郡)을 설치하면서 옥문관과 함께 세워졌다. 옛 실크로드 남도(南道)로 나가는 관문으로 당대(唐代) 인도를 방문했던 현장법사가 양관을 통해 중국으로 돌아왔다. 양관 일대는 소륵하(疏勒河, Shule River) 주변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크게 번창했는데 송대(宋代) 이후 실크로드와 함께 쇠퇴하였다. 당시 쌓았던 성벽은 남아 있지 않으며 언덕에 봉수대터만 볼 수 있다. 지금은 양관박물관이 세워져 실크로드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한대 만리장성 관문을 재현해 놓고 있다.
만리장성 양관은 둔황 도심에서 남서쪽으로 75 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타클라마칸 사막 언저리에서 쿤룬산맥을 따라 인도 방면로 이어지는 실크로드 남도 관문이다. 한대(漢代) 이래 많은 왕조들이 서역을 장악하기 위해 군대를 이곳을 통해 파견했으며, 인도를 향해 순례를 떠났던 승려들이 관문을 지나갔다.
<양관박물관>
한무제의 명을 받고 천신만고 끝에 굴곡의 삶을 산 장건의 서역 원정은 외교적으로는 실패했지만, 그때까지 중국인의 의식 밖에 존재했던 서역을 비로소 인식 안으로 끌어들였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장건의 이 원정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사막을 건너 오아시스 국가들을 찾아 외교 사절로 출발했고, 그 길을 따라 온갖 교역들이 이루어졌으니, 장건이야말로 실크로드의 개척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옥문관[ 玉門關 ]
사방은 사막이다. 멀찌감치 흙벽이 덩그마니 놓여있다. 얼른 달려가 보니, 옥문관이라는 빗돌이 놓여있다. 관문은 없어지고, 옛날 자취만 이렇게 사막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봉화대였다는데, 봉화대인지, 관문의 아랫부분인지조차 분간이 안 간다.
옥문관은 한나라 무제 때 이광리의 페르가나 원정 때, 돈황이 군사 기지인 둔전으로 개발되면서 설치된 관문이다. 그 뒤 오랜 세월 옥문관은 양관과 함께 서역으로 나가는 중국의 국경 역할을 해 왔다. 허텐의 옥이 이 문을 통해 중국으로 유입되었기 때문에 옥문관이라고 이름 붙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길의 출발점인 돈황에 지금 서 있다. 숱한 옛 사람들이 돈황 이 길에 서서 가야할 막막한 사막에 대한 노래를 읊었다. 그 노래들에 자주 등장하는 곳이 양관이고 옥문관인 것은 그런 때문이다.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의 시 <원이를 안서로 보내며(送元二使安西)>를 떠올린다. 시의 무대가 양관이고, 내가 거쳐 온 트루판 같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渭城朝雨浥輕塵 위성조우읍경진 위성 아침 비 장안의 먼지를 씻어내니
客舍靑靑柳色新 객사청청류색신 여관 앞 푸릇푸릇 버들빛 새로워라
勸君更盡一杯酒 권군갱진일배주 그대여, 이 술 한잔 다시 받으시게나
西出陽關無故人 서출양관무고인 서쪽 양관 밖에는 나 같은 친구도 없으리니.
당나라 시인 왕한의 시 <양주사(涼州詞)>
葡萄美酒夜光杯 포도미주야광배 야광배에 가득 담긴 향기로운 포도주
欲飮琵琶馬上催 욕음비파마상최 마시려니 비파 소리 말을 재촉하네
醉臥沙場君莫笑 취와사장군막소 그대여, 내 취해 사막에 쓰러져도 비웃지 말게
古來征戰幾人回 고내정전기인회 예전부터 원정 떠나 돌아온 이 몇이나 되나.
이곳 옥문관을 거쳐 돈황에 온 옥으로 만든 야광배에, 사막의 과일 포도주를 마시며, 술 보다도 사막의 막막함에 취한단들 누가 무어라고 하겠는가?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對酒五首 대주5수) 중 [其四]
百歲無多時壯健(백세무다시장건),
一春能幾日晴明(일춘능기일청명).
相逢且莫推辭醉(상봉차막추사취),
聽唱陽關第四聲(청창양관제사성).
백 살을 살아도 몸 성할 때 많지 않고
봄 중에 맑은 날은 또 며칠이겠소.
서로 만났으니 또 사양 말고 취하여
양관(陽關)의 이별가를 들어보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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