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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국내여행

충남 아산 여행5 현충사 참배(2020.07.17)

by 도화유수 2020. 7. 21.

현충사 양편에 흰 무궁화꽃이 멋지다.

아산 현충사[牙山 顯忠祠]

충무공 이순신(忠武公 李舜臣)장군의 얼을 기리는 사당

온양온천 역에서 4km 떨어진 염치읍 방화산 기슭에 위치한 현충사는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얼을 기리는 사당으로 숙종 32년(1706년)에 처음 세워졌으며 이듬해 숙종이 친히 현충사란 이름을 내렸다. 1932년 일제 때에 이충무공 유적보존회가 결성되어 사당을 다시 지은 후 1966년부터 1974년까지 정부에서 성역(547,297㎡)을 크게 확장하고 성역화하여 온 국민의 성지로 다듬었다.

현충사는 1706년 숙종 임금 때 건립되어 이순신 장군을 향한 추모의 향불이 끊이지 않았으나,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었다가 1905년 을사늑약에 분노한 유림들이 현충사 유허비를 건립하였다. 그 후 일제 강점기 때 ´충무공묘소 위토 경매 사건´이 발단이 되어 전국민이 거국적으로 모은 성금으로 1932년 현충사를 중건(重建)하게 되었다.

이후 1967년에 박정희 대통령의 성역화 지시로 순한국식 콘크리트 구조로 된 현재의 현충사로 세워졌고, 기존의 건물은 서편 참배로 옆으로 이전하여 ´구 현충사´라 부른다.

현충사에 모셔져 있는 이순신 장군의 영정은 월전 장우성 화백의 1953년도 작품으로 1973년에 국가 표준영정으로 지정되었고 영정을 그릴 때 친분이 있었던 유성룡(柳成龍)이 쓴 징비록(懲毖錄)이라는 책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용모에 관한 기록을 참고하였다.

현재 현충사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탄신일을 기념하여 매년 4월 28일 정부주관으로 제전을 올리고 있다.

고택(이순신 장군이 살던 옛집)

이순신 장군이 무과에 급제하기 전부터 살던 집으로 종손이 대대로 살았으며 일부는 개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집 뒤편에는 충무공의 위패를 모신 가묘가 있어 매년 기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활터

활터는 옛집 옆에 자리잡고 있으며 수령이 수백년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나란히 서있는 곳으로 이순신 장군이 활을 쏘던 자리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활터를 둘러싼 방화산의 능선은 이순신 장군께서 말을 타고 달리던 치마장(馳馬場)이 있어 충무공의 기개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정려와 연못

정려는 충신이나 효자, 열녀에게 임금이 편액을 하사하여 그들이 살던 마을 입구에 세워두던 건물로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사표(師表)로 삼아 그 정신을 고취하고 본받도록 하는 것이다. 현충사 정려에는 이충무공 장군과 그의 조카 이완, 사대손 이홍무, 오대손 이봉상 등 네 명의 충신과 팔대손 이제빈의 효자 편액이 걸려있다. 원래 정려는 동남향으로 정위치에 있었으나 현충사 성역화시 참배객들의 편의를 위하여 서향으로 방향을 바꾸어 해체·복원하였다.

정려는 충신이나 효자, 열녀에게 임금이 편액을 하사

정려 옆으로는 1970년대 현충사 성역화시 조성된 궁궐의 연못을 본 뜬 것으로 보이는 커다란 연못이 있다.

연못 한가운데 조그만 섬을 조성해 놓았다. 보통 궁궐의 연못이 이러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

2011년 4월 28일 개관한 충무공이순신기념관은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이순신장군과 조선 수군의 활약을 기념하는 곳으로 크게 전시관, 교육관, 사무동 3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있다.

기념관은 독특한 구조물로 잔디를 입힌 언덕 모양의 두 건물 속에 흙벽을 입혀 건물이 안겨있는 형상을 가지고 있다.

전시관은 지상1층, 지하1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1전시실인 해전실은 임진왜란때 조선수군의 승리를 조명하는 전시실이며 2전시실은 충무공실로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생애와 후대의 추모를 다룬 전시실이고 기획전시실은 이순신장군과 임진왜란에 관련된 특정 주제로 기획전이 이루어지는 전시실이다.

3D영상과 체험의자를 결합한 4D 체험 영상실도 있다.

교육관은 최대 70석 가량의 강당 시설로 충무공이순신기념관에서 개발한 각종 교육프로그램이 열리는 곳이다.

 

온양온천역에서 전철을 타고 귀가길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