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로터리 제일 중심은 동성고등학교이고 그중에서도 동성100주년 기념관이고 혜화아트센트.
우리은행 앞에 시비.
11월 24일 평소와 같이 서울시민대학 성균관대학교 노자(이현구 교수)강의를 받으려 강의실에 도착했다. 내 비슷한이가 몇명 나와 있다 그래도 이상해서 문자를 확인하니 휴강메시지이다. 평소 강의를 알려주는 메시지인 줄 알고 보지도 않은 것이 실책이다. 아무튼 이 기회 혜화동이나 한 번 둘러보기로 마음을 먹는다.
혜화역 1번출구 앞 정류소에서 성균관대학 제일 끝 운동장 앞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 요금300원으로 이용하기 편리하다.
오늘 아침에 내린 첫 눈으로 성대 캠퍼스의 모습이 보기가 좋다.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혜화동으로 가는 중. 갈 때는 옛보성고자리 올림픽기념 국민생활관으로 돌아서 혜화동 로터리로 간다.
그래서 혜화동사무 앞에서 하차. 완전 한옥의 동사무소 건물(메스컴에도 자주 등장했다.)
혜화동로터리를 소개하는 첫 번째. 중국집'금문' 동성고등학교에 근 30년 근무하면서 한 때 짭봉국물에 소주먹던 기억이 나는 곳. 그당시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 같은 이야기가 많이 돌던 짱봉국물맛 인육을 사용했다나? 어째던 기억이 오래 남은 곳.
동양서림
동양서림 간판에는‘SINCE1953’라 되어 있는데 혜화동로터리 현재 자리에 책방을 낸 것은 1960년으로 보인다. 이렇게 본다면 현재의 책방은 58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1960년 4.9혁명이 태어나던 사람들의 나이와 같은 연륜을 가진 책방이다.
장욱진(張旭鎭1917-1990)은 동경 제국미술학교를 졸업하고 1948년 신사실파, 1954년 서울대학교 교수로 활동하다가 1960년 학교를 그만두면서 오직 화가의 길을 걸었다. 소탈한 성품과 그대로 소박한 그림이 대중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데 1960년 서울 종로구 명륜동 집을 마련했고 또 이웃에 동양서림을 개설했다. 고택은 흔적조차 없어 단지 그저 그곳이 그터였다고 할뿐이지만 동양서림은 여전하다.
나와의 인연은 책방주인이 동성고 선생님께는 한 동안 20%정도 할인을 해준 기억이 난다.
혜화우체국
SK주유소
혜화파출소
파출소 옆골목 가톨릭서원과 멀리보이는 혜화칼국수집
김영삼대통령 때문에 유명해진 혜화칼국수집.
혜화동성당. 오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고 103위 성인그림의 원본이 성당안에 걸려있는 곳이다.
출장부폐로 유명한 목동 본점. 학교의 회식장소로 많이 다녀간 곳.
혜화동로터리를 감싸고 있는 아남아파트. 주민의 아이디어로 '창경궁 뜰'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정말 윗층에서 창경궁이 내려다 보인다.
동성학교 담장의 대나무숲과 서울시에서 조성한 물길. 아직 담장 위에는 장미가 남아있다.
대한조국주권수호일념비. 몇 년전에 세운 것 같은데 벌써 세월의 때가 묻어보인다.
약간 윗 쪽 동성학교 교정편으로 4.19의 시작점 비석.
옆으로 동성100주년기념관과 강당이 보인다.
우리은행 혜화동지점. 옛 상업은행 혜화동지점이고 우리나라 최초의 금융사건(박영복)으로 알려진 곳이다.
동성100주년 기념관 혜화아트센터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살면(4호선 끝자락 안산등) 한국천주교회에서 혜화동성당에서 필리핀원어로 미사를 드릴 수 있게 배려해서 그들만의 공동체가 형성된다. 혜화동로터리에서는 필리핀공동체가 형성되어 필리핀사람들을 상대로 매주 일요일에 장이 선다. 그래서 장터에 오면 마치 이국에 온 듯한 느낌이다. “사장님 드시고 가세요” 서툰 우리말이 오가는 필리핀 주말시장에 있다. (사진은 퍼옴)
그리고 뒷편에 로터리의 주인격인 동성중고등학교
약 30년 근무했던 서울 생활의 모든 추억이 묻어있는 곳이다. 앞의 담장가에는 1990년 무렵에는 장미꽃 담장으로 유명해서 선배선생님이 어느 유명 백과사전에 실린 장미가 이 담장을 찍어서 올렸다고도 들었다. 너무 많은 것이 기억에 남아 있어서 기록이 안된다.
지금의 혜화동로터리 전경
지금부터 혜화동로터리의 역사 기록이다.
먼저 1960년대 모습
고가도로 이전 꽃 터널. 그유명한 상업은행 혜화동지점의 간판이 오른편에 선명하다.
혜화동입체교차로 건설
혜화고가도로의 모습
지금부터 이 사진은 2008년 8월 방학 중에 학교에 왔다가 혜화동로터리에서 고가를 철거하는 장면을 나의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이다. 역사의 현장이라고 생각하여 열심히 찍었으나 휴대폰의 성능상 화질이 좋지 못하다.
혜화동로터리 시비
“아침이 오면/혜화동 로터리는 꽃처럼 피어난다/(중략)/혜화동 로터리는 사시사철/꿈을 싣고 돌아가는 회전목마/(중략)/정다운 이웃과 그리운 사람들/기쁨과 슬픔을 서로 나누며/오늘도 빙그르르 손잡고 돌아간다”
서울 혜화고가도로 철거 1년을 맞아 고가철거를 기념하는 시비 제막식이 8일 서울 혜화동 로터리 부근에서 열렸다. 이날 자리는 도시 미관을 해치고 지역발전의 걸림돌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혜화고가도로가 8월 철거된 이후 주민들이 혜화동 로터리 일대를 문화가 숨쉬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취지에서 시비 건립을 추진해 이뤄졌다. 우리은행 혜화동지점 앞에서 설치된 시비는 김영진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장)의 시 ‘혜화동 로터리’를 조현판 한국한글서예학회장이 한글 고체로 쓴 것을 오석(烏石)에 새긴 것이다. 황금찬 시인은 축사에서 “혜화동 로터리는 문화가 살아 있는 공간이었다”며 “이 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이 시가 꽃으로 활짝 피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신문기사)
역시 혜화역 1번출구로 나와서 4번출구로 귀가 한다.
연극의 중심 혜화동 대학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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