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현충원과 동작구

남묘와 함박눈(2017.01,20)

by 도화유수 2017. 1. 20.

 <동작구 사당3동 180-1 에 소재한 남묘>

 

 

 

 

아침에 일어나니 밤새 함박눈이 내렸다. 그리고 계속 내리고 있다. 눈이 그친10시경에 아파트에서 내려다본 사진.

 

 

 

 

 

 

 

 

아파트 앞에 잇는 삼일공원으로 나온다.

 

 

 

 

바로 앞에 있는 삼일공원에 새로운 삼일독립선언서 비가 세워져있다.

 

 

 

주위의 나무를 많이 제거하고 훤하게 되어있다.

 

예전 마라톤 연습하던 공원길에도 눈이 많이 쌓여있다.

 

 

 

 

 

삼일공원의 유래.

 

 

 

삼일공원입구로 나와서 아파트를 돌아간다.

 

 

 

 

 

 

 

 

 

오후에 국립묘지 뒤 까치산에 눈구경하려 오른다.

 

 

 

눈이 내려 시야가 좋아져서 동작대교 반포대교 한남대교까지 한강이 시원하게 보인다.

 

동작충효길 곳곳에 구청에서 많이 가꾸어 놓았다.

 

 

 

동작구 구석구석에 동작이야기가 있다.

 

아래로 남묘가 보인다.

 

서달산 남쪽 산록에는 관우(關羽)를 모신 사당인 남관왕묘(南關王廟)가 있습니다. 일반인의 사당임에도 그 격이 매우 높다는 것은 사당의 이름에도 명확히 나타납니다. 왕의 조상들을 모시는 사당이 종묘(宗廟)이고 유학의 창시자인 공자와 그의 제자 성현들을 모시는 사당인 대성전(大成殿)을 문묘(文廟)라하며 관우를 모신 사당을 관왕묘(關王廟)라 부를 정도로 같은 격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경북의 성주와 안동에 임진왜란때 세운 관왕묘가 있고, 그 뒤에 세운 것으로 보이는 서울의 동묘(東廟)와 남묘(南廟)의 두 개의 묘(廟)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관운장을 모신 것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다음은 관우 운장을 우리나라에서 모시게 된 이유를 알 수 있는 일화입니다.

임진왜란때 명나라 후원군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영접사(迎接使)가 의주까지 마중을 나갔더니 명장 이여송이가 "귀국의 군신(軍神)은 누구를 모시고 있는냐?" 하고 물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문(文)만 숭상하고 무(武)를 경시했기 때문에 군신을 모신 일이 없으니 대답하기가 난처했다. 그래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이여송이 재촉하는 바람에 명나라를 다녀온 수신사중에 한 사람이 중국인들이 많이 모시고 있던 "관운장을 모시고 있다." 고 엉겹결에 대답해 버렸다. 그러나 만일 명장 이여송이 만약 사당에 참배하게 되면 낭패이므로 급히 조정에 비밀이 연락했던 바 조정에서 "시급히 관운장의 사당을 설치하라" 는 연락이 떨어졌고 임진왜란 때 관왕묘를 갑자기 세우고 관왕의 위패를 모시게 되었다.

그리고 임진왜란 이후에 세워진 동묘와 남묘의 연유는 먼저 동묘의 경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조선을 도우러 온 명나라 장병들이 말하기를 "평양싸움, 홍산싸움 때에 관우의 영혼이 나타나서 왜병들과 싸우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명나라의 장군인 진유격은 한양에 있는 북악산 꼭대기에 관왕묘를 세우고, 석상을 만들어 앉히고, 석상 옆에 관운장이 자기들과 조선을 도운 사실을 기록한 비를 처음으로 세웠고 이것을 선조 39년에 서악 동대에 옮겨 다시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