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산티아고 순례길

명동성당에서 산티아고를 향하다.(2023.03.03)

by 도화유수 2023. 3. 3.

명동대성당
명동대성당 뒷편 성모님상
명동성당에서

우여곡절 끝에 나의 인생 버킷리스트의 하나인 산티아고 순례길이 일정(2023.04.01~04.30)이 잡혀지고 준비가 하나 둘 이루어진다. 그 준비중의 하나인 마음의 준비이다. 동행할 딸과 함께 명동성당을 찾는다.

 

주교좌 명동대성당의 역사

사적지로서 명동대성당

천주교서울대교구주교좌명동대성당은 명실공히 한국 천주교회의 상징이자 심장이다.

이곳은 한국 교회 공동체가 처음으로 탄생한 곳이자 여러 순교자의 유해가 모셔진 곳이기도 하다. 2천 년 교회사 안에서 유례 없이 한국 천주교회는 한국인 스스로의 손으로 창립됐다.

 

한국 천주교회의 출발은 1784년 봄, 이승훈이 북경에서 영세한 뒤 귀국한 때로부터 치지만 그보다 4년이 앞선 1780년 1월 천진암에서는 권철신을 중심으로 하는 강학회가 열렸고 여기에서 당시의 저명한 소장 학자들은 천주학을 접하게 된 것이다.

그 해 가을, 서울 명례방에 살던 통역관 김범우는 이들의 영향을 받아 천주교에 입교하고 자신의 집에서 교회 예절 거행과 교리 강좌를 열게 된다.

그럼으로써 수도 한복판에 겨레 구원 성업의 터전을 닦았고 바로 이곳에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의 산 역사인 주교좌 명동대성당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승훈, 정약전 3형제, 권일신 형제 등이 이벽을 지도자로 삼아 종교 집회를 가짐으로써 한국 천주교회가 창립됐으나 이 신앙 공동체는 이듬해 형조 금리(刑曹禁吏)에게 발각돼 김범우가 경상도 단장으로 유배되면서 해체됐다. 그 후 1882년 명동은 한미수호 조약의 체결로 종교의 자유를 얻게 될 것을 예견한 제7대 교구장 블랑 주교에 의해 성당 터로 매입된다. 블랑 주교는 이 곳에다 우선 종현 서당을 설립, 운영하면서 예비 신학생을 양성하는 한편 성당 건립을 추진해 한불 수호 통상 조약(1886년)을 체결한 이듬해인 1887년 5월, 대지를 마저 구입하면서 그 해 겨울부터 언덕을 깎아 내는 정지 작업을 시작했다.

이 때 신자들은 손수 팔을 걷어 붙이고 정지 작업에 나섰는데 블랑 주교는 파리 외방 전교회에 보낸 보고서에서 이들의 신앙적 열성을 이렇게 적고 있다.

"남자 교우들은 사흘씩 무보수로 일하러 왔는데 그것도 12월과 1월의 큰 추위를 무릅쓰고 왔습니다.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이 일에 놀랄 만한 열성을 쏟았고 그들은 신앙과 만족감에서 추위로 언 손을 녹일 정도로 참아 내는 것이었습니다."

 

신자들의 열성으로 시작된 주교좌 명동대성당의 정지 작업은 풍수 지리설을 내세운 정부와의 부지 소유권 분쟁에 휘말려 4년이 지난 1892년 5월 8일에 가서야 기공식을 갖는다. 그 사이 초대 주임 블랑 주교가 1890년 선종하고 두세 신부가 2대 주임으로 부임했다. 성당 설계와 공사의 지휘 감독은 코스트 신부가 맡았는데 그는 약현(현 중림동) 성당과 용산 신학교의 설계 감독도 맡았다.

코스트 신부가 1896년 선종하고 그 뒤를 이은 프와넬 신부에 이르러서야 성당 건축을 마무리 짓고 드디어 1898년 5월 29일 성신 강림 대축일에 조선 교구장 뮈텔 주교의 집전으로 역사적인 축성식을 가졌다.

기공 후 무려 12년만에 완공된 주교좌 명동대성당은 순수한 고딕 양식 건물로 그 문화적인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사적 제258호로 지정된 주교좌 명동대성당이 준공된 후 그 지하 묘역에는 기해병인박해 당시 믿음을 지킨 순교자들의 유해를 안치해 왔다.

파리 외방 전교회 선교사로 우리나라에 첫 입국해 기해년 1839년 9월 12일 순교한 앵베르 주교와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는 새남터에서 군문 효수의 형을 받은 후 한강변 모래밭에 매장됐었다. 순교한지 약 20일 후 칠팔 명의 신자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세 분의 유해를 거두어 지금의 서강 대학교가 소재한 노고산에 4년간 매장했다. 그 후 유해는 1843년에 삼성산으로 이장됐다가 1901년에 이곳으로 모셔졌다.

           명동성당

​                                           정호승

​바보가 성자가 되는 곳

성자가 바보가 되는 곳

돌멩이도 촛불이 되는 곳

촛불이 다시 빵이 되는 곳

홀연히 떠났다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곳

돌아왔다가 고요히 다시 떠날 수 있는 곳

죽은 꽃의 시체가 열매 맺는 곳

죽은 꽃의 향기가 가장 멀리 향기로운 곳

서울은 휴지와 같고

이 시대에 이미 계절은 없어

나 죽기 전에 먼저 죽었으나

하얀 눈길을 낙타 타고 오는 사나이

명동성당이 된 그 사나이를 따라

나 살기 전에 먼저 살았으나

어머니를 잃은 어머니가 찾아오는 곳

아버지를 잃은 아버지가 무릎 꿇는 곳

종을 잃은 종소리가 영원히

울려퍼지는 곳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우리부녀는 명동칼국수(현재이름 명동교자)에서 점심을 먹고 해어진다.

11:40 명동교자는 만원이다. 10여분지나니 벌써 우리자리가 나온다. 1층, 2층 음식이 간편하니 회전이 매우 빠르다. 그래도 명동칼국수 명성만큼이나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