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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유럽여행

동성고 유럽연수5

by 도화유수 2021. 2. 14.

이 작업 역시 코로나19사태로 모든 활동이 중지된 이 때에 그동안 묵혀두었던 숙제(그동안 여행기록의 포스팅하여 보관하는 작업)를 하는 것이다. 이번 작업은 2009년 2월 동성고 유럽연수 기록이다.

컴퓨터에 잘 보관하여 두었는데 막상 컴퓨터에 폴드만 남아있고 사진등 내용이 없어졌다. 가까이 지내는 옛동료에게 부탁하여 메일로 받고 그당시 남아있는 사진을 스캔하여 복원작업을 했다. 그래서 나의 사진이 적다.

퇴직후에 생각해도 동성고등학교는 좋은 학교이다. 교직원의 사기진작을 위해 15년이상 근속자에게 유럽연수를 재단에서 시켜준다. 정말 열심히 노력한 우리는 이런 좋은 여행을 갈 자격이 있기도 하지만 그런 배려를 해주는 학교당국에 무한히 감사드린다.

 

제5일 ( 2009년 2월 11일 수요일)

로마관광-바티칸미술관 베드로대성당 트레비분수 스페인광장 판테온 콜로세움 포로로마노 판테온 진실의입

로마(이탈리아어: Rome)

로마는 이탈리아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로, 라치오주의 주도이며, 테베레 강 연안에 있다. 로마시의 행정구역 면적은 1,285.31 km2이고 대도시현의 인구는 400만이 넘지만 밀라노나 나폴리 대도시현에 비해 면적이 3~4배 넓은 편이고 되려 로마시의 면적과 밀라노와 나폴리의 대도시현의 면적이 비슷하므로 세 도시 모두 300만 정도로 비슷한 규모의 도시라 볼 수 있다.

로마 건국 신화에 따르면 로마 건국 원년은 기원전 753년으로 2,500여년의 역사를 가진 것으로 얘기되지만, 인류는 그 전부터 이 지역에 정착하여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져있다.[1] 초기 로마는 라틴인, 에트루리아인, 그리고 사비니인으로 구성되었다. 한때는 서양 문명을 대표하는 도시로서 로마 제국의 수도였고, 로마 가톨릭교회의 중심지였으며, 그 역사 덕분에 유럽 문명 사회에서는 로마를 가리켜 ‘세계의 머리(Caput mundi)’, ‘영원한 도시(la Città Eterna)’라고 부른다.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로 로마시는 서서히 교황의 정치적 영향을 받게 되었다. 서기 8세기부터 1870년까지 로마는 교황령의 수도가 되었다. 이탈리아의 통일 이후 1871년에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가 되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이탈리아의 수도로 자리잡고 있다.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으로 여름에는 고온건조하다. 원래는 로마의 일부였으나 교황령으로써 독립한 바티칸 시국이 자리잡고 있다. 법적으로는 엄연히 다른 나라이지만 역사·종교·문화적으로 이탈리아, 특히 로마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지역은 거리가 좁고 대부분이 테베레 강가의 동쪽에 위치해 있다. 로마의 과거의 영광의 흔적인 기념 석조물의 대부분은 이 지역에 있다.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시내 중심가로 들어간다.

바티칸 시국(라틴어: Status Civitatis Vaticanæ 스타투스 키비타티스 바티카나이)

바티칸 시국(라틴어: Status Civitatis Vaticanæ 스타투스 키비타티스 바티카나이) 약칭 바티칸 시(라틴어: Civitas Vaticana 키비타스 바티카나, 이탈리아어: Città del Vaticano 치타 델 바티카노) 또는 바티칸은 이탈리아의 로마 시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경 역할을 하는 장벽으로 둘러싸인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는 내륙국이자 도시 국가이다. 바티칸 시는 바티칸 언덕과 언덕 북쪽의 바티칸 평원을 포함하며, 0.44km2의 면적에 약 900명 정도의 인구를 지녔으며 면적과 인구로 보아 매우 작은 독립 국가이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여의도 면적의 대략 1/6정도 된다.

이전에 로마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반도 중부를 넓게 차지한 교황령(756-1870)이 있었으나, 19세기 이탈리아 왕국에 강제 합병되었고, 10년 후인 1870년에는 로마와 더불어 나머지 다른 지역도 모두 이탈리아에 합병되어 소멸했었다. 바티칸 시국은 이 교황령의 회복을 목표로 한 1929년 2월 11일 라테라노 조약의 체결로 독립을 성취하여 오늘에 이른다.

교황이 통치하는 일종의 신권 국가로, 전 세계 가톨릭 교회의 총 본부이다. 바티칸 시국의 공무원들은 대부분 성직자나 수도자로 이루어져 있다. 국제 관계에서는 성좌(Sancta Sedes)로 호칭된다.

바티칸 미술관(이탈리아어: Musei Vaticani)

바티칸 미술관(이탈리아어: Musei Vaticani)은 로마의 비알레 바티카노 바티칸 시 내부에 있는 세계 최대급 규모의 미술관 가운데 한 곳이다. 로마 가톨릭교회에 의해 세워진 광대한 전시관에는 수세기에 걸친 예술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바티칸 미술관은 16세기에 교황 율리오 2세에 의해 설립되었다. 바티칸 미술관과 통하는 방문 경로에는 시스티나 성당과 라파엘로가 장식한 서명의 방이 있다. 2015년 기록을 보면, 바티칸 미술관에는 한 해에 600만명이 방문하였다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인한 금융위기때문에 관광객이 대폭 줄어 처음에 예상은 2~3시간 줄을 서야 입장가능하다는 가이드의 설명과 달리 바로 입장하는 행운을 누렸다. 그래서 오후일정을 더 많이 소화할 수 있었다.

성 베드로 대성당(라틴어: Basilica Sancti Petri, 이탈리아어: Basilica di San Pietro in Vaticano)

성 베드로 대성당(라틴어: Basilica Sancti Petri, 이탈리아어: Basilica di San Pietro in Vaticano)은 바티칸 시국 남동쪽에 있는 대성당을 말한다. 바티칸 대성당(Basilica Vaticana)이라고도 부른다. 성지 가운데 하나이자 기독교 세계의 모든 교회 가운데 가장 거대한 교회로 유일무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개신교를 제외한 기독교의 전승(애초에 개신교는 전승을 인정하지 않는다)에 따르면, 서기 67년에 순교한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자 로마의 초대 주교, 즉 교황 성 베드로의 무덤 위에 대성당을 건립했다고 한다. 성 베드로 대성당이 로마의 수많은 교회 가운데 가장 유명하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대중의 인식과는 달리 으뜸 교회는 아니다. 로마 교구의 대성당의 명예를 지닌 교회는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이다.

성 베드로의 시신이 대성당의 제대 아래에 묻혀 있는 까닭에 옛날부터 교황이 선종하면 그 시신을 제대 아래에 안치해오고 있다. 대성당은 4세기 이래 이 장소에 있었다. 대성당의 건설은 1506년 4월 18일에 시작되어 1626년에 완료되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그 종교성과 역사성, 예술성 때문에 세계적인 순례 장소로 유명하다. 르네상스부터 바로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예술계의 거장들이 주임 건축가 직책을 계승하면서 오랜 세월에 걸쳐 지은 건축 작품으로서 당대의 가장 거대한 건물로 여겨진다. 로마의 모든 초창기 성당들처럼 성 베드로 대성당 역시 입구가 동쪽에 있으며 후진(後陣)은 서쪽 끝에 있다.

점심식사는 인근의 중식당에서

트레비 분수(이탈리아어: Fontana di Trevi)

트레비 분수는 로마에 있는 분수이다. 이탈리아의 건축가 니콜라 살비에 의해 지어졌고, 높이는 26.3m, 너비는 49.15m이다. 로마에 있는 바로크 양식의 분수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며, 세계적으로도 매우 유명한 분수이다. '로마의 휴일'과 같은 영화에도 다수 출연하며 로마의 랜드마크 중 하나가 되었다.

1629년 이전에는 현재 트레비 분수가 자리한 곳은 옛 로마 시대에 물을 공급하던 수로가 끝나는 곳이었다. 이 수로는 로마에서 13km나 떨어진 곳에서 물을 끌어와 시민들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했고, 무려 400년 동안이나 이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였다.

스페인 광장(이탈리아어: Piazza di Spagna)

스페인 광장은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광장으로, 스페인 대사관이 있어 스페인 광장이라 불린다. 스페인 광장에는 트리니타 데이 몬티 성당으로 이어지는 트리니타 데이 몬티 계단(통칭: 스페인 계단)이 있다.

판테온(라틴어: Pantheon)

판테온(라틴어: Pantheon)은 그리스어 ‘판테이온(Πάνθειον)’에서 유래한 말로,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이라는 뜻이다.

고대 로마 신들에게 바치는 신전으로 사용하려고 지은 로마의 건축물로,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서기 125년경 재건했었다. 모든 고대 로마 건축물 가운데 가장 보존이 잘 되어 있고, 전 세계를 통틀어 당대 건물 가운데서도 가장 보존 상태가 좋다고 평가한다. 역사적으로 판테온은 쭉 사용했었다. 현존하는 건물의 설계는 트라야누스 황제의 건축가인 다마스쿠스의 아폴로도루스가 했다는 견해도 있으나, 이 건물 자체와 건물의 설계는 하드리아누스 황제나 그의 건축가들이 했을 가능성이 크다. 7세기 이후부터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당으로 사용했다. 판테온은 현재 로마에서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돔 구조이다. 바닥에서 원형 구멍까지의 높이와 돔 내부 원의 지름은 43.3m로 같다. 베드로 대성당건축시 건축자재로 많이 가져가고 지금의 형태로 남았다고 한다.

콜로세움(Colosseum, 이탈리아어: Colosseo 콜로세오)

콜로세움(Colosseum, 이탈리아어: Colosseo 콜로세오)은 고대 로마 시대의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로마 제국 시대에 만들어진 원형 경기장이다. 석회암, 응회암, 콘크리트 등으로 지어져 있고, 5만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었다. 로마의 중심지에 위치하여 있고, 현재는 로마를 대표하는 유명한 관광지로 탈바꿈하였다. 콜로세움이라는 이름은 근처에 있었던 네로 황제의 동상(巨像:colossus)에서 유래한다. 원래 이름은 플라비우스 원형 경기장으로, 서기 72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착공해 8년 뒤에 아들인 티투스 황제가 완공했다.

콜로세움은 수 세기 동안 계속 개축되어왔고, 로마 제국의 전성기에는 5만 명에서 8만 명의 관중들을 수용할 수 있었다. 콜로세움에서는 주로 검투사들의 결투가 이루어졌으며, 모의 해전, 동물 사냥, 신화의 재연 등 다양한 행사들이 펼쳐졌다. 다만 중세에 이르러 제국이 쇠퇴하고 로마가 폐허로 변하자, 콜로세움도 이와 같은 변화를 피하지 못하고 주성이 개집, 화장실, 침실과 같은 용도로 사용되었다.

콜로세움은 강도, 약탈, 채석과 같은 파괴 행위로 상당 부분이 손상을 입었으나, 여전히 로마의 상징과 같이 여겨지고 있다. 로마에서 가장 인기있는 관광지 중 하나이며 2018년에는 480만 명의 관광객들을 끌어들였다.

콜로세움은 이탈리아에서 사용되는 5센트 유로화 동전에도 새겨져 있다.

포로 로마노(이탈리아어: Foro Romano)

포룸 로마눔(라틴어: Forum Romanum)은 고대 로마 시대의 유적지이며, 이탈리아어로는 포로 로마노(이탈리아어: Foro Romano)라고 부른다. 이탈리아 로마 구도심 한가운데 있다. 주요 정부 기관 건물들이 직사각형 모양의 광장을 감싼 형태다. 고대 로마 시기에 이 곳을 포룸 마그눔(Forum Magnum)이나 포룸(Forum)이라고 불렀다.

유구한 로마 역사 내내 포룸 로마눔은 로마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였다. 이곳에서 개선식, 공공 연설, 선거, 심지어는 검투사 경기까지 국가의 중대 행사를 열었다. 팔라티노 언덕과 캄피돌리오 언덕 사이 있으며, 현재는 몇몇 잔해와 기둥만 남아있다. 현재 어느 정도 발굴을 진행했고, 연간 450만 명 관광객이 방문한다. 고대 로마의 가장 중요한 건축물 대부분 바로 이 포룸 로마눔에 있었다. 로마에 세운 최초 사원과 신전은 이 곳에 있었으며, 고대 왕궁, 베스타 신전, 베스타 여사제들 거처 등 모두 이 곳에 있었다. 포룸 로마눔의 건물들은 전체적으로 로마 제정 시기에 크게 확장했었다.

치르코 마시모(Circo Massimo)  고대 전차 경주장(진실의 입 뒤 건너편에 위치)

고대에 전차 경주가 열리던 경기장이다. 길이가 약 700m에 가까운 거대한 운동장으로 지금은 주로 집회 장소로 많이 이용된다. 2006년 이탈리아가 월드컵에서 우승했을 때 우리나라의 서울 시청과 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밤새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였다.
치르코 마시모에서는 수많은 유적들이 발굴되었는데 특히 현재는 로마 시내 여러 곳에 산재해 있는 오벨리스크들이 발견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기원전 7세기에 만들어졌으며 25만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말 이 치르코 마시모가 유명한 이유는 이곳에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죽고 아피아 가도를 따라 있는 카타콤베에 시신이 묻혔다. 지금은 한적한 풀밭으로 남아 앉아서 쉬어 가기에 적당한 곳이다.

진실의 입(La Bocca della Verità)

진실의 입(La Bocca della Verità)은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대리석 가면 조각으로,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의 서쪽 벽을 장식하고 있다. 이 거대한 마스크는 지름 1.5m에 무려 1,300kg이나 되는 무게를 지니고 있으며 아마도 바다의 신 오케아누스의 얼굴을 묘사한 것으로 추정한다. 눈구멍, 콧구멍, 입이 뚫려 있고, 현재까지 정확한 용도는 확인되지 않았다. 추측되는 용도로는 헤라클레스 신전의 하수도 뚜껑이나, 제물을 바칠 때 나오는 피를 바닥으로 흘려보내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설이 존재한다. 약 13세기 쯤에 이 조각은 원래 있던 자리에서 뜯겨져 성당으로 옮겨졌고, 17세기에 현재의 위치에 놓였다.

'진실의 입'이라는 이름은 중세 시대에 '거짓말을 한 자는 이 조각의 입에 손을 넣어서 잘려도 좋다'라는 서약을 한 데에서 유래한다. 벽 뒷면에 손을 자르는 사람이 도끼를 들고 서있었다는 설도 있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온 이후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in Cosmedin)은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성당이다. 발렌타인데이에 유래가 된 성 발렌타인의 유골이 있다.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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