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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운장산자연휴양림2 운장산등산(2020.05.22)

by 도화유수 2020. 5. 24.

오늘의 정상인 운장산(우장대)에서 같이온 친구들과
관리사무소 부근의 경치
내처사마을로 가는 도중에 운일암 까페 안단테와 건너편 풍광

         ◈ 운장산(雲長山) ◈

운장산(雲長山): 정상에 오르면 사방팔방 호남의 이름있는 산을 모두 관망할 수 있는 특이한 명산

전북 진안군 주천면 운장산 (대불리 2038)

진안(鎭安) 고원(高原)의 진산인 운장산(雲長山)은 원래 '주출산'이었는데 구봉 송익필의 자를 따서 '운장'이라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이는 운장이 말년에 정여립(鄭汝立)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되었을때 이곳 운장산에 은거한 옛 일에 기인한 일이다.

악업(惡業)에 얽혀 평생을 파란만장하게 보낸 송구봉이지만, 그의 높은 학문과 경륜은 500년 세월이 지난 오늘에도 그 이름을 진안 고원의 높은 산정(山頂)에 남겨 오래오래 빛을 발하게 한다. 역시나 권세로 얻은 이름은 잠시이나 청사(靑史)에 남긴 아름다운 이름은 영원한 법이다.

未圓常恨就圓遲 (미원상한취원지)

圓後如何易就虧 (원후여하이취휴)

三十夜中圓一夜 (삼십야중원일야)

百年心思總如斯 (백년심사총여사)

보름달이 되기 전에는 더디기만 하더니

보름달이 되고 나서는 어찌 그리 쉬 기우는가

서른날 가운데 둥글기는 단 하루 뿐

우리네 인생 백년도 이와 같을 것이라.

- 宋翼弼(송익필) '望月(망월)'

구봉(龜峰) '송익필(宋翼弼)' 선생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다. 1534년 생으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당상관(堂上官)을 지낸 송사련(宋祀連)의 3남이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사림의 당쟁(黨爭)이 격화되어 동서남북인으로 분열 반목하던 혼란의 시기였다.

송익필은 천재였다. 7세에 이미 붓을 잡고 뛰어난 시문(詩文)을 지어 주위를 놀라게 했고 스스로 책을 보고 이치를 깨우쳤다. 이십 대 약관(弱冠)의 시절부터 학문으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그리고 당대 최고의 문장가들인 율곡 이이(栗谷 李珥), 우계 성혼(牛溪 成渾), 송강 정철(松江 鄭澈) 등과 교유하였고 그들과 정치 경륜 및 학문에 관해 토론하며 자신의 학문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송익필은 조정에 출사(出仕)하지 않고 평생을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쓰며 살았는데, 이는 복잡다단한 그의 집안 내력에 기인하였다.

송익필의 부친 '송사련'은 그의 어머니가 좌의정 '안당(安瑭)' 부친의 몸종의 딸로 비천한 출신이었다. 그런 그가 안당 집안에서 조광조(趙光祖)의 신원(伸冤)을 모의하는 것을 듣고 이를 밀고(密告)하여 신사무옥(辛巳誣獄)의 참변을 일으켰다. 그 결과 안당 집안은 몰살하고 말았다. 이런 밀고의 댓가로 송사련은 당상관으로 출세하고 안당 집안의 재산을 차지하여 권세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불의한 방법으로 얻은 권세는 오래 가기 어려워 무고 당했던 안당의 신원(伸寃)이 회복되면서 송익필의 가문은 안당 집안의 복수에 시달리게 되었다.

밀고자의 집안이라는 세간 사람들의 악평과 천출(賤出)이라는 신분의 제약 때문에 벼슬보다는 학문에 몰두하여 후학의 양성에 힘쓴 송구봉은 학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나 원한 깊은 안당 집안의 복수로 말년에 온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고 만다.

이번에는 오히려 안당 집안의 노비가 될 처지에 빠진 송씨 집안 사람들은 이름을 바꿔 뿔뿔이 도망을 가고 안당의 후손들은 송사련의 무덤을 파헤쳐 복수를 했다. 송구봉 역시 도망자 신세가 되어 율곡, 정철 등에 의지하다가 임진왜란이 끝난 이듬해인 1599년 66세의 일기로 세상을 뜨게 되었다.

송익필의 일대기를 정리하다 보니 위의 詩가 더욱 의미 깊게 다가 온다.

三十夜中圓一夜

百年心思總如斯

삼십 일 한 달동안 보름달 밝기는 하루 뿐이고 백년 인생에 화려한 날 또한 그러하리란 그의 노래엔 불의한 방법으로 얻은 권력이 한 세대만에 다시 전세 역전 되어버린 송구봉 가문의 부침(浮沈)이 어려 있다.

 

          ◈ 운장산(雲長山) ◈

운장산은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정천면, 부귀면, 완주군 동상면에 걸쳐 있으며 남쪽과 북쪽으로 흐르는 물은 금강으로 유입되고, 서쪽 계곡으로 흐르는 물은 완주군 동상면을 지나 만경강으로 흘러 금강과 만경강의 발원지 구실도 하고 있다.

해발 1,125.9m의 높이로 호남지방 노령산맥 중 제일 높은 산이며 북두칠성의 전설이 담겨 있는 칠성대를 지나 더 올라가면 오성대가 있는데 조선조 중종 때의 서출 성리학자 송익필(1534~1599년)이 은거하였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주요 등산 코스로는 부귀면 궁항리나 황금리로 오르는 코스와 완주군 동상면 신월리로 오르는 코스가 있고 주천면 중사, 외처사동 마을에서 시작하여 동봉으로 오르는 코스도 있다.

정상에서의 조망이 무척 뛰어나다. 북쪽으로 대둔산과 계룡산이, 동으로는 덕유산국립공원, 남쪽으로는 마이산과 그 뒤로 지리산 전경이 웅장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출처-한국관광공사)

 

내처사주차장-동봉(삼장봉)-운장대-서봉(칠성봉)-활목재-내처사주차장/7.3km/휴식포함 4시간반

내처사주차장 해발 약500m 운장산 1126m(약 600m 등산)

내처사 주차장 주소 : 전북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2042

 

 

운장산에서 원점회귀의 출발점인 진보산장 입석. 여기에 주차해두고 내처사마을로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조금 등산을하다가 만난 까치 살모사.

진보산장에서 내려오다 알탕도 먹고 서울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