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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국내여행

성북동 나들이2(2023.01.20) 길상사

by 도화유수 2023. 1. 21.

길상사 극락전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24번째 마지막 절후인 대한입니다.

“춥지 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 “소한의 얼음 대한에 녹는다.”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제주도에서는 이사나 집수리를 비롯한 집안 손질은 언제나 신구간에 하는 것이 관습화되어 있는데 신구간은 대한 후 5일에서 입춘 전 3일간을 말하는 것으로 보통 1주일이 된다고 합니다. 오늘부터 추워지면서 대한 추위를 예고합니다. 그래도 세전에 큰마음 먹고 성북동 나들이를 합니다.
성북동 나들이의 제일 포인트는 역시 길상사입니다. 이곳은 대원각시절에 와 본 적이 있는 곳이라 더욱 관심이 있습니다. 한성대입구역 5번 출구로 나와서 700m 쭉 올라와서 선잠단지를 따라 우측으로 계속 800m정도 올라가면 나옵니다.

 

길상사 吉祥寺

1. 개요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 송광사의 말사이다.

1997년에 세워졌으므로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최고급 요정이었던 대원각(大苑閣)이 불교 사찰로 탈바꿈한 특이한 설립 이력으로 유명한 곳이다.

2. 대원각 시절

대원각 소유주였던 김영한씨는 16살 때 조선권번에서 궁중아악과 가무를 가르친 금하 하규일의 문하에 들어가 진향이라는 이름의 기생이 됐다. 그가 지금의 길상사 자리를 사들여 청암장이라는 한식당을 운영했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 대형 요정인 대원각이 됐다.

1970-80년대 군사정권 시절은 '요정정치'라고 불릴 만큼 요정은 큰 영향력을 가진 곳이었다. 그중에서도 3대 요정으로 불리던 대원각은 박정희 시절 고위급 인사들과 재벌들의 비밀 회동 장소로 자주 이용됐다. 제3공화국, 제5공화국과 관련된 드라마와 영화들을 보면 으리으리한 기와집에 가야금 소리가 들리고 기생이 나오는 술집이 나오는데 이 배경이 대원각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처럼 요정문화를 대표하는 대원각을 통해 김영한은 엄청난 부를 이뤘다.

1970-80년대, 한국은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대원각과 같은 시설을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기생관광의 무대로 활용했다. 1973년에는 정부 기관인 국제관광공사 산하에 요정과라는 부서를 설치하고 이 업무를 관리하도록 했다. 대원각은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 관광유흥음식점으로 지정하여 지방세 감면 등의 특별한 세금 혜택을 주었다. 또한 일본인의 입국제한도 풀어주었고 통금제한도 예외적으로 무시할 수 있도록 했고, 성매매 단속법에도 적용을 받지 않도록 해주는 등의 특혜를 주었다. 접객 여성들에게는 관광 종사원 등록증을 발급해주었는데 이들 또한 통금제한을 무시할 수 있는 특혜가 있었다.

3. 내력

공덕주 김영한(1916~1999)은 가난 때문에 팔려가다시피 만난 남편과 사별한 후, 기생이 되었다. 기명은 진향(眞香). 성북동 기슭에 서울 3대 요정 중의 하나인 대원각을 1950년대부터 운영해 부를 얻었지만, 명예와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

기생을 천하게 여기는 풍토는 8.15 광복 이후에도 계속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김영한은 말년에 길상사 시주와 시인 백석과의 일화로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유명세를 얻게 된다.

김영한(김자야)은 자신이 시인 백석의 연인이었다고 주장했으나 백석 측은 부인, 문학계에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백석 연구가 송준은 "생전의 김영한을 인터뷰했는데, 의구심이 든다. 백석이 유명해지니 관계를 인위적으로 만들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닐까?"라고 추측했고, 백석 전문가인 이동순 영남대학교 교수 역시 "백석과 김영한의 사랑은 실제가 아니며, 조작되고 윤색된 이야기"라고 기고했다.

김영한은 승려 법정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을 받아, 1987년 법정스님에게 요정 터 7,000여 평과 40여 채의 건물을 시주하니 절을 세워달라고 간청하였다. 법정은 처음에 사양하였으나, 결국 1995년 이를 받아들여 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의 말사로 등록하여 길상사를 세웠고, 이전 길상사의 창건 법회에서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을 받았다.

길상사가 백석의 거주지로 알려졌으나, 이는 백석 연구가인 송준이 백석의 일본 아오야마가쿠인 유학 시절 3학년 시기의 주소를 도쿄 길상사 1875번지에서 살았던 것으로 잘못 추정했기 때문이며, 아오야마가쿠인대학 학적부와 동창회부를 통해 정확한 주소가 다시 알려졌다. 김영한이 길상사라고 절 이름을 지은 것은, 자신과 백석과의 관련성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당시 시가로도 1,000억 원이 넘는 액수였다고 하는데, 무소유를 설하던 법정이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시주를 받은 것에 대하여 불교 내부에서도 논란은 있었다. 그러나 법정이 신나서 덥석 받은 것도 아니고, 10년 가까운 실랑이 끝에 김영한의 마지막 원을 이루어준 것이니 이를 비난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

1999년에 김영한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화장하여 절터에 뿌려졌다. 절터에 골고루 산골했기 때문에 따로 무덤은 없으나, 그녀를 기리는 공덕비가 절 안에 있다. 2010년 법정스님도 여기서 입적했다. 극락전에 김영한의 영정을 모시고 있으며, 진영각에 법정의 영정과 유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사망 이후, 딸 서모 씨가 조계종에 50억 원을 달라고 소송하여 승소했다.

법정스님이 처음 출가하신 사찰인 송광사의 옛 이름이 길상사다. 출가한 사찰과 한때나마 같은 이름을 사진 사찰에서 입적하니,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일까.

4. 분위기

나무위키에 항목이 개설된 절치고 평범한 절은 없다지만, 이 절은 본래 요정이었기 때문에 절의 풍경부터 다른 전통적인 사찰과는 좀 다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불교 신자가 아닌 사람이 산책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기에는 오히려 편안한 측면도 있다. 군사정권 시절, 요정 정치가 벌어지던 밀실이 지금은 누구나 참선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개방되어 있다. 불교 관련 서적을 열람할 수 있는 도서관 등이 갖추어져 있다.

다만, 요정이었던 길상사 금당은 불상과 주변물 정도만 가져다 놓았을뿐 더 이상 꾸미지 않아 상당히 썰렁한 분위기를 풍긴다. 절 주변에 비교적 규모가 있는 건물을 새로 새우는 것에 비하면 조금 아쉬운 부분.

 

길상사의 관세음보살상

현대식 조각품인 관세음보살상은 법정이 종교 간 화합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천주교 신자인 조각가 최종태에게 의뢰하여 봉안하였다. 사찰의 설립식 행사 때 김수환 추기경이 직접 절을 방문해 축사를 한 적이 있고, 법정은 이에 대한 답례로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성당을 방문해 답사했다. 성모 마리아 비슷한 분위기인데, 나이 지긋한 불자들은 좀 낯설어하기도 하는 듯. 최종태는 길상사와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는 종로구 혜화동 성당의 성모상도 조각했는데, 이 성모상과 관세음보살상은 마치 친자매처럼 매우 닮았다. 제작자의 의도를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다. 최종태의 성모마리아와 관세음보살

대웅전 앞마당에 빼곡히 심어진 꽃무릇이 상당히 아름답기도 하다. 이 꽃무릇 밭을 보러 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편.

5. 기타

도쿄도 무사시노시의 기치조지와 한자가 같다.

근처에 석조 유물 전문 박물관인 우리옛돌박물관과 한국가구박물관이 있다.

길상사라는 이름의 절은 전국에 산재해 있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에 위치한 길상사가 가장 유명하나, 서울특별시 관악구,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에도 있다.

송광사가 처음 창건되었을 때의 이름이기도 하다.

6. 교통

길상사가 위치한 성북동은 버스 노선이 별로 없는 부촌이므로 대중교통으로 찾아가기 불편하다. 2015년 4월부터 셔틀버스가 폐지되고 길상사 앞까지 가는 마을버스 노선인 서울 버스 성북02가 길상사까지 연장되었다. 대로인 대사관로에서 걸어서 올라가면 20~30분 정도 걸린다.

 

부처님오신날과 같이 사람들이 많이 오는 날에는 교통 전쟁이 벌어진다. 어떤 택시는 이것을 노려서 합승을 권유하기도 한다. 택시 요금은 한성대입구역 기준으로 기본 요금 정도이다.<위키백과>

범종각
관음보살상
설법전
맑고 향기로운 가게
길상선원

 

진영각

 

적묵당

 

길상화 보살 사당
길상화 공덕
길상헌
극락당
지장전
선열당
지장전과 선열

길상사(吉祥寺)는 서울 성북동에 있는 사찰이다.

시민모임 [맑고 향기롭게]의 근본도량이다.

 

길상사(吉祥寺)의 절 이름은 ‘길하고 상서로운 절’이란 의미로,

묘길상(妙吉祥) 곧 문수보살의 별칭에서 인용된 불교용어이며,

승보사찰(僧寶寺刹) 송광사(松廣寺)의 옛 이름이기도 하다.

 

처음 1985년에 김영한으로부터 자신의 재산을 희사해

절을 짓게 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법정은 이를 간곡히 사양하였으나,

김영한은 10년 가까이 법정을 찾아와 끈질기게 부탁했고

이에 법정 또한 이를 받아들여,

1995년 6월 13일 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 말사인 '대법사'로 등록하여

처음 사찰이 되었고, 초대 주지로 현문이 취임하였다.

1997년에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로 이름을 바꾸어 재등록되었고

같은 해 2월14일에 초대 주지로 청학이 취임하였다.

아래 사진 중앙에 보이는 길상사 7층 석탑은

기독교 신자인 영안모자 백성학 회장이 기증했으며

길상사가 종교 화합의 상징적 공간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1997년 길상사개원 축사를 김수환 추기경이 해주셨고

2005년 5월 15일 부처님 오신 날 저녁에는

김수환 추기경과 수녀님들을 초대하여 '길상음악회'열어

불교와 천주교의 종교를 뛰어넘은 만남을 갖기도 했다.

파리에 길상사 분원이 있다. 또한 1997년 세워진 길상사는

역사는 짧지만 개원법회가 있던 날, 김수환 추기경이 개원 축사를 하였다.

경내에 있는 관음보살 석상은

천주교 신자이자 가톨릭 예술가인 최종태가 건립한 것으로,

같은 조각가가 혜화동 성당에 건립한 성모마리아 석상과 닮아 있다.

길상사는 종교 화합의 상징적 공간이기도 하다.

다소곳이 자리 잡고 앉아서 깊은 명상에 잠긴 석조 동자승

시주 김영한 (법명/길상화) 공덕비

옅은 눈이 쌓인 공덕비 앞에 누군가 예쁜 화분을 놓고 갔다.

시주 김영한(법명/길상화)의 사당이다.

본원에서 작은 개울을 건너는 다리 너머에 공덕비와 함께 단정하게 지어놓았다.

사찰의 창건주였던 법정은

불문에 귀의한 김영한에게 길상화라는 법명을 주었고,

김영한 사후에도 길상사에서 정기법회를 열었으며,

법정스님은 2010년 3월 11일

길상사에서 78세(법랍 54세)로 입적하였다.

법정 스님의 진영이 모셔져 있는 곳, 진영각

법정스님 자신이 나무를 잘라서 손수 만들어 사용하던 의자가

법정스님의 진영각 한 켠에 자리하고 있다.

강직하고 검소한 삶을 실천한 법정스님의 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