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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국내여행

서울에 있는 하동매실 거리(2022.03.27)

by 도화유수 2022. 3. 27.

신답역과 용답역사이 청계천변 하동매실거리
신답역과 용답역사이 청계천변 하동매실거리

봄구경 나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오전에 할 일 있었지만 빨리 끝내고 하늘을 보니 너무 좋은 날이다. 만사를 제치고 봄맞이를 하자. 점심을 먹고 바로 집을 나선다. 집부근 사당청소년회관의 목련이 만개직전의 아름다움을 선보이고 봄이 내 가까이 왔음을 알린다.  7호선을 타고 한강을 지나니 롯데 빌딩이 송곳처럼 솟아있다. 한강과 대비하여보는 풍광이 너무 멋지다. 뚝섬유원지역에 내려 서울 따릉이를 빌려타고 뚝섬한강유원지 쪽으로 나아간다. 역시 잘 나왔다는 생각이다. 푸른 한강이 거센 봄바람에 일렁이고 모처럼 좋은 날씨에 밀려던 상춘객이 절정을 이룬다.

 

성수대교 부근의 대크에서 조금 쉬며 사방을 돌아보니 역시 장관이다. 벌써 파랑게 물들은 수양버들이 바람에 멋진 처녀의 머리처럼 휘날리고 늘 오른 던 관악산도 여기에서는 낮아 보인다. 내사랑 서울 따릉이와 기념촬영도하고 중랑펀으로 달려간다.

 

늘 차로 지나치면서 봄에 제일 멋진 곳으로 꼽았던 옥수역 부근 근린공원의 개나리를 사진에 담아본다.

 

그리고 아직 덜 피었지만 서울에서 개나리하면 응봉산, 응봉산하면 봄 개나리 아니던가.

 

서울 살곶이 다리[서울 箭串橋]

길이 78m(258척), 너비 6m(20척)

1967년 12월 15일 사적 제160호로 지정되었다가, 2011년 12월 23일 보물 제1738호로 승격되었다.

한천(漢川:현재의 중랑천)과 청계천이 만나 한강을 약 2km 앞둔 곳에 놓여졌으며, 현재의 서울 성동구 행당동과 성수동의 경계에 있다. 조선시대의 가장 긴 다리였다고 하며 원래 이름은 제반교(濟盤橋)였고 일명 살곶이다리라고 한다.

1420년(세종 3) 세종의 명령으로 영의정 유정현(柳廷顯)과 공조판서 박자청(朴子靑)이 감독하여 공사를 시작하였으나 강의 너비가 너무 넓고 홍수를 이겨내지 못해 교기(橋基)만 세우고 중지하였다가 63년 후인 1483년(성종 14)에 완성하였다. 길이 78m(258尺) 너비 6m(20尺)였다. 높이 1.2m인 기둥을 네 줄로 세운 위에 받침돌을 올리고 대청마루를 깔듯 세 줄의 판석을 빈틈없이 깔았다. 가운데 두 줄의 교각을 낮게 하여 다리의 중량을 안으로 모았으며, 돌 기둥에 무수한 흠집을 새겨놓아 물살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하였다.

조선시대에 도성에서 동남쪽으로 경상도 봉화(奉化)에 이르는 간선로(幹線路) 위에 놓여 있었다. 즉 동대문이나 광희문(光熙門)을 통해 도성을 벗어난 후 만나는 큰다리로서 그 후 송파진(松坡津)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 충주 방면으로 연결되었다. 국왕이 군사훈련 참관 등을 위해 뚝섬[纛島]으로 행차할 때도 이용하였다.

대원군이 경복궁을 지을 때 다리 절반의 석재를 가져다 쓴 후 버려져 있었는데, 1972년 서울시에서 복원하였으나 원형 그대로 복구되지는 못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답역과 용답역사이 청계천변 하동매실거리

인근의 벗나무도 꽃몽우리를 볼록하게 만들고 준비중이다.

전철로 돌아오니 맑은 하늘 때문에 관악산이 눈앞에 다가온다. 멋진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