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국내여행

동묘를 들리다.(2023.03.17)

by 도화유수 2023. 3. 22.

동묘 정전
흥인지문(동대문)

번개입니다,내일 17일 점심 가능하신분 11시반 종각역 3번출구입니다.
좋은데요 시간 12시반으로 조정합시다.
조정가능
12시 반 좋습니다.
내일 17일 4호선 동대문역 8번출구에서 12시반에 봅시다.  4호선 접근성을 감안 .장소변경합니다.

점심식사모임이 번개로 잡혔다. 

 

식사후 신설동까지 걷기로 마음먹고 걷다가 들린 동묘이다. 주변은 풍물시장으로 복잡하다.

동관왕묘(東關王廟)(동묘)

지정종목 : 보물 제142호

지정일 : 1963년 1월 21일

소재지 : 서울 종로구 난계로27길 84 (숭인동) /

지번 : 서울 종로구 숭인2동 238-1

시대 : 조선 선조때​

 

원래는 관왕묘가 5군데(동관묘, 서관묘, 남관묘, 북관묘, 중관묘)였는데, 지금은 두곳(동관묘와 남산에서 사당으로 옮긴 남관묘)만 남았다고 합니다. ​

동관왕묘는 서울의 동쪽에 있는 관왕묘라는 뜻으로 '관왕묘'는 중국의 장수 관우의 조각상을 두고 제사를 드리는 사당인데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를 도와준 명나라의 요청으로 선조 34년(1601)에 지었다고 합니다.

​동관왕묘의 중심건물은 두 개의 건물이 앞과 뒤로 붙어 있는 형식으로 앞은 제례를 위한 전실이고 뒤는 관우와 부하장군들의 조각상을 둔 본실인데 이러한 형태는 중국의 사찰이나 사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라고 합니다.

동묘는 동관왕묘의 준말로 삼국지의 영웅 관우가 죽은 뒤에 점점 신격화되어 관왕(關王)으로 받들어지면서 사당보다 격이 높은 묘(廟)가 된 것으로 조선왕조에는 관왕묘가 없었지만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파병온 명나라 장수들이 주둔지에 관왕묘를 세우면서 등장하기 시작하였는데 서울에서는 1598년 명나라 장수 진인이 남대문 밖에 남관왕묘를 세운 것이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중국 명나라에서는 공자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인 문묘(文廟)처럼 관우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을 무묘(武廟)라 하여 크게 숭배하였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조선 후기에 신흥종교와 미신이 흥행하는 상태에서 고종이 북관왕묘와 서관왕묘를 세우면서 무묘를 많이 지었지만 일제가 관왕묘는 임진왜란 때 항왜(抗倭)유적이라 하여 1908년 동관왕묘만 남겨두고 모두 폐모시켰다고 합니다.

 

 

동묘의 입구는 외삼문이다.

▶외삼문(外三門)

동관왕묘의 정문으로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좌우칸에는 지붕을 달아내 마루방을 들였다.

입구 나무벽면의 그림은 오래되어 흐릿하다.​

외삼문으로 들어서면 중문(내삼문)이 나타나고 오른편은 화장실인데 현재는 공사중이다.

▶내삼문(內三門)(중문)

동관왕묘의 중문으로 문이 세개이며 초익공 겹처마 팔작지붕집으로 외삼문 뒤에 있는 문이다.

동관왕묘 내삼문(중문) 입구에 하마비(下馬碑)와 금잡인(禁雜人) 표지석이 서있다.

 

 

내삼문(중문)을 들어서면 정전이 나타난다.

 

​▶동관왕묘(東關王廟) : 정전

중국 촉나라 장수 관우를 모신 관왕묘로 동관왕묘, 동묘, 무묘(武廟-무관의 사당)라 불리기도 한다. 옆면에서 보면 두개의 건물이 합쳐진 모습이다. 앞건물은 제례를 지내던 건물이며 뒷건물은 정전, ​임진왜란 당시 관우가 꿈에 나타나 왜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고 조선과 명나라가 합작하여 세웠다 한다. 전쟁후라 백성의 피땀이 서린 건축물이다.​

 

관우의 시호인 현령소덕의열무안성제묘(顯靈昭德義烈武安聖帝廟)라는 글이 적힌 현판이 2개가 있다. 중앙현판은 고종이 동관왕묘에 내린 현판이고 오른쪽 현판은 북관왕묘에 걸려 있던 것을 옮긴 것이다.

 

**넓은 벽돌벽과 독특한 지붕모양, 조각상, 실내의 구성과 장식 등은 중국의 제례방식에 따라 지었기때문에 중국풍 건축의 모습을 보여주는 17세기 제사시설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곳이다.​

동관왕묘는 전쟁 이후 명나라와 조선의 우호를 다지면서 굉장히 공을 들여서 지어졌기 때문에 상당히 수준 높은 문화재라고 한다(출처 : 나무위키)

 

오래된 수령의 향나무는 지짓대를 받치고 무성하게 서있고, 현성전(顯聖殿)라는 현판 아래 천정에는 학그림이, 곳곳에 현판과 주렴들 오래된 것도, 최근에 쓴 것 같은 것도 보이고 작은 공간이나 빼곡빼곡 하게 걸려 있다.

 

​▶정전(正殿)내

금동관우좌상(金銅關羽座像)과 일월오병도 문위에 현령소덕무안왕묘(顯靈昭德武安王廟)현판, 안쪽에는 관우장, 그리고 그 뒷편에 동관왕묘 일월오봉도(東關王廟 一月五峰圖),이 병풍은 홀수(7폭)병풍으로 일월오병도 병풍중 제일 크며, 붉은 해가 왼쪽 흰달이 오른쪽에 배치된 것이 특이하다.

*조선시대 만든 관우상(높이 2.5m, 무게 2.4톤 청동상)중 제일 크다 한다.

전실입구에는 '현령소덕무안왕묘'라는 현판과 '만고충신', 천추의기'라는 문구가 주련으로 걸려 있다. 전실에 걸려 있는 현판은 영조대왕이 쓴 어필이고, 관우상 좌우에 형주에서 관우를 모신 관평, 조루, 주창, 왕보가 관우상을 호위하듯이 서 있다.

동관묘 정전에는 '천고완인'  22개 정도의 현판이 걸려 있는데 모두 조선에 온 중국사신들이 쓴 것이라고 합니다.

동관왕묘 정전은 두 개의 건물이 이어져 있는 형태로 전실과 후실사이에 무지개 모양의 협문이 있고 열주에는 이곳이 제향공간임을 알리는 흰색이 칠해져 있다.

 

동관왕묘 정전에 설치되어 있는 제례시 사용되는 석물

 

▶동무(東武)와 서무(西武)

동쪽에는 동무가, 서쪽에는 서무가 있고, 창살사이로 보니 커다란 북이 보관되어 있다.

**봄과 가을에 치러지는 대제(大祭)때는 임금이 직접 무복(武服)을 입고 참례를 하였다.

어막대(御幕臺)는 국왕이 행차할 때 쉬어가던 곳으로 숙종이 처음 관왕묘에 들러 관심을 보였고 영조는 재위기간 중 열일곱번이나 관왕묘를 찾았다고 합니다.

537f05aa624d43.09390451.pdf
3.28MB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동관왕묘가 품고 있는 보물들 , 동관왕묘 전경 및 소장 유물의 pdf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