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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양녕대군의 사랑이야기

by 도화유수 2016. 9. 5.

양녕대군의 사랑이야기

양녕대군의 사랑이야기

 

어느 해 여름이었다. 세종은 양녕대군에게 관서지방을 유람하도록 권유했다. 유람 중에 소복한 여인을 만났고, 첫눈에 반해 깊은 사랑에 빠졌다.

그런데 어느 덧 헤어져야만 하는 시간이 되었다. 소박한 여인은 이별을 못내 아쉬워하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왕자이신 나리께서, 한 번 떠나시면 기약 없는 이별이 될 것 이니, 그동안의 절절한 정표로 글씨를 남겨주시지 않으시렵니까?” 하면서 흰 소복 치마를 펼치는 것이었다. 양녕대군도 이별이 아쉬웠던 지라 일필휘지로 거침없이 글씨를 써 내려갔다.

“어렵고 어렵도다 너도 어렵고, 나도 어렵도다.難難爾難我難하고,(난난이 난아난)

나는 머물기 어렵고, 너는 보내기 어렵도다.我留難爾送難이로다.(아류난 이송난)

너는 남쪽으로 따라가기 어렵고, 나는 북방을 떠나기 어렵다.南向爾隨難 北方我別難이라.(남향이수난 북방아별난)

길이 멀어 글로서 소식전하기 어렵고,명월공산 꿈속에서 서로 만나기 어렵도다.

塞外書寄難 空山夢尋難이로다.(새외서기난 공산몽심난)

오랫동안 사모하던 생각을 단번에 잊기 어렵고,이 한잔 술로 결별하기가 어렵도다.長思念一忘難 一杯訣此酒難이라.(장사념일망난 일배결차주난)

너의 옥 같은 노래 소리 목메지 않기 어렵고.爾能琪歌聲不咽難하고,(이능기가성 불인난)

나는 울음을 참을 수 있지만 눈물 글썽이지 않기 어렵도다.誰云 蜀道上天難이련가! (수운촉도 상천난)누가 말했던가! 촉나라 길에서 하늘을 보기가 어렵다고,我能禁泣 眼無淚難이로다.(아능금읍 안무누난)

오늘 이 순간의 어려움만 같지 않을 것이니 매우 어렵도다.

 不如今日 一時難이니 又難이로다.(불여금일 일시난 우난)

 

양녕대군이 써내려간 <八難詩.(팔난시)>였다.

그날 그렇게 헤어진 양녕대군은 임금과 약속한 기일을 지키기 위해 평양 북쪽의 몇 고을을 대충 돌아보고 허둥지둥 서울로 돌아왔다. 그날 세종임금이 남대문 누각에 주안상을 차려놓고 형님인 양녕대군을 맞았다.

“이번 관서지방을 다녀오시는 길에 왕실을 부끄럽게 한 일은 없으시겠지요.?”

양녕대군이 답변을 하기도 전에 곧바로 풍악이 울려 퍼졌고, 병풍 뒤에서 아리따운 여인이 나와서 춤을 추는데, 바로 소복을 했던 그 여인의 치마폭에선 그가 써주었던 <팔난시八難詩>가 펄럭이고 있었다.

양녕대군이 임금 앞에 넙죽 엎드리고 말했다.

“상감 너그럽게 용서하소서.”

세종임금은 양녕대군의 부끄러워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이 마냥 즐거워하면서 술을 마셨고, 양녕대군도 역시 덩 다라 취했다.

임금의 명을 받은 평양감사가 평양의 이름난 기생은 정향丁香에게 소복을 하게 한 뒤 양녕대군의 눈에 뜨이도록 한 것이었다.

양녕대군과 정향의 아름다운 사랑을 전해들은 임금이 평양에서 정향을 불러 들여 평생 동안 함께 하도록 설득한 것이었다.

 정향의 치마폭에 아름다운 이야기를 써 내려간 양녕대군의 글씨가 바로 불에 타서 사라진 숭례문의 현판 글씨였다

 

돈 때문에 혹은 권력 때문에 형제간에도 소송을 벌이고 칼부림을 하며 싸우는 시대에 세종임금과 그의 큰 형인 양녕대군의 우애가 어찌 그리도 아름다운지,

 

<우리땅걷기 신정일>

출처 : 희망과 행복이 가득한 아름다운 세상
글쓴이 : 한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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