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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벨메르에서 머물다. 6선암사 매화 (02.26)

도화유수 2021. 3. 1. 14:30

선암사 승선교
선암사 대웅전
선암사 선암매

 

조계산 송광사 ·선암사 일원[ 曹溪山 松廣寺·仙岩寺 一圓 ]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와 송광면 신평리에 걸쳐 있는 사지. 명승 제65호이다.

2009년 12월 9일 명승 제65호로 지정되었다. 송광사와 선암사는 조계산(884m)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조계산은 소백산맥의 말단부에 있는데, 산세가 험하지 않으며, 고온다습한 기후로 활엽수가 많다. 비룡폭포, 감초암폭포 등이 있고, 명산으로서의 경관을 갖추고 있어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송광사는 우리나라 삼보사찰 가운데 하나인 승보사찰로 유서가 깊은 절이다. 보조국사를 비롯한 16국사를 배출하였다. 《송광사지(松廣寺誌)》에 보면 신라 말기에 혜린(慧璘)이 이곳에 절을 짓고 산 이름은 송광, 절 이름은 길상(吉祥)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규모도 작고 승려도 30∼40명이었다. 그러다가 1200년 보조국사 지눌(知訥)이 정혜사를 이곳으로 옮겨와 수선사라 이름을 고쳐 짓고, 수도하면서 대찰로 중건하였다. 조계산도 이때까지는 이름이 송광산이었으나 조계종의 중흥도량(中興道場)이 되면서 조계산이라고 고쳐 불렀다. 그뒤 점차 규모가 커져 전당이 60여 동에 이르렀으며 국내 거찰 중에서도 꼽히는 사찰이 되었으나, 6·25전쟁 때 대웅전을 비롯한 20여 채의 전당이 소실되었다. 이후 중건을 계속하여 현재 거의 복원되었다. 27점의 국보, 보물, 유형문화재 등을 소장하고 있다.

선암사는 삼십일본산의 하나이다. 《선암사사적기(仙巖寺寺蹟記)》에 보면 542년(진흥왕 3) 아도(阿道)가 비로암(毘盧庵)으로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875년(헌강왕 5)에 도선국사가 창건하고 신선이 내린 바위라고 하여 선암사라고 이름지었다고도 한다. 1092년(선종 9)에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중건하였다가 임진왜란 때 거의 전소되었다. 그뒤 1660년(현종 1)에 중건하였으나 화재로 소실된 것을 1824년(순조 24)에 해붕(海鵬)이 다시 중창하였다. 6·25전쟁 때 일부가 소실되어 지금은 건물이 28동만이 남아 있으나 그 전에는 65여 동의 대가람이었다. 주변에는 수십년된 나무들이 빽빽하여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으며, 전각과 문화재가 많이 보존되어 있다. 대웅전은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41호로 지정되어 있다. 보물 제395호로 지정된 삼층석탑 2기는 신라시대의 중요한 유적이다. 이밖에 승선교, 강선루 등 문화재 19점을 소장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조계산 송광사 ·선암사 일원 [曹溪山 松廣寺·仙岩寺 一圓] (두산백과)

 

2021년 2월 26일 12시 낙안읍성에서 점심식사후 바로 이번 여행의 마지막 여정인 선암사를 향하여 달려간다.

 

순천 선암사[ 順天 仙巖寺 ]

전라남도 순천시에 있는 고찰로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선암사사적기(仙巖寺寺蹟記)》에 따르면 542년(진흥왕 3) 아도(阿道)가 비로암(毘盧庵)으로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875년(헌강왕 원년)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고 신선이 내린 바위라 하여 선암사라고도 한다. 고려 선종 때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중건하였는데, 임진왜란 이후 거의 폐사로 방치된 것을 1660년(현종 1)에 중창하였고, 영조(英祖) 때의 화재로 폐사된 것을 1824년(순조 24) 해붕(海鵬)이 다시 중창하였다.

6·25전쟁으로 소실되어 지금은 20여 동의 당우(堂宇)만이 남아 있지만 그전에는 불각(佛閣) 9동, 요(寮) 25동, 누문(樓門) 31동으로 도합 65동의 대가람이었다. 특히 이 절은 선종(禪宗)·교종(敎宗) 양파의 대표적 가람으로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송광사(松廣寺)와 쌍벽을 이루었던 수련도량(修鍊道場)으로 유명하다. 경내에는 보물 제395호 선암사 삼층석탑과 보물 제1311호 순천 선암사 대웅전 등 다수의 중요문화재가 있어 역사적 가치가 크다. 2009년 12월 21일 사적 제507호로 지정되었다.